부모님 재산을 정리하다 보면 유언장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형제자매 사이에 유류분 분쟁이 생기지는 않을지, 상속세는 얼마나 나올지 걱정이 겹치는 시점이죠. 최근에는 은행이나 신탁회사가 판매하는 유언대용신탁이 이 두 가지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주는 상품처럼 소개되곤 합니다. 그러나 신탁으로 재산을 미리 옮겨두어도 상속세 과세 대상에서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유언대용신탁의 구조와 상속세 과세 원리, 분쟁 예방 효과의 실제 한계를 법령과 최근 판례 흐름으로 짚어봅니다.
유언대용신탁은 재산 이전 절차를 간소화하고 사망 전 관리 공백을 줄여주지만, 상속세 과세가액 계산에서는 일반 상속재산과 동일하게 취급됩니다. 절세 효과를 보려면 신탁 설계에 사전증여와 유류분 검토가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유언대용신탁이란 무엇인가 — 구조와 과세 원리
유언대용신탁은 신탁법 제59조에 근거한 제도입니다. 위탁자가 생전에 신탁회사(수탁자)에게 재산을 맡기고, 본인이 살아있는 동안은 스스로 수익자가 되며, 사망 이후에는 미리 지정한 사후수익자에게 수익권이 넘어가도록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사후수익자로 지정된 사람은 위탁자가 사망하기 전까지 아무런 권리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위탁자는 신탁행위로 달리 정하지 않는 한 생전에 수익자를 변경할 권리도 갖습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과세입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9조는 위탁자가 신탁한 재산과 그 신탁으로 위탁자가 받을 이익을 상속재산으로 간주합니다. 신탁계약을 맺어 재산 명의를 수탁자에게 넘겨두었다 해도, 위탁자가 사망하는 시점에는 해당 재산이 상속세 과세가액에 그대로 합산됩니다. 신탁이라는 형식이 과세를 피해가는 통로가 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상속세는 과세표준에 따라 10%부터 50%까지 누진세율이 적용됩니다. 신탁재산이 포함된 상속재산 전체에 이 세율이 그대로 적용되며, 신탁을 거쳤다고 해서 별도의 낮은 세율이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 과세표준 | 세율 | 누진공제액 |
|---|---|---|
| 1억원 이하 | 10% | 없음 |
| 1억원 초과 ~ 5억원 이하 | 20% | 1천만원 |
| 5억원 초과 ~ 10억원 이하 | 30% | 6천만원 |
| 10억원 초과 ~ 30억원 이하 | 40% | 1억6천만원 |
| 30억원 초과 | 50% | 4억6천만원 |
참고로 2025년 발표된 자녀공제 5억원 상향 개정안은 2026년 8월 현재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기초공제 2억원, 일괄공제 5억원, 자녀 1인당 공제 5천만원, 배우자공제 최소 5억원에서 최대 30억원 등 기존 공제 체계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유언과 유언대용신탁, 무엇이 다른가
두 제도 모두 사망 후 재산을 특정인에게 넘기려는 목적은 같지만, 효력이 발생하는 방식과 분쟁 위험은 다릅니다.
| 구분 | 유언 | 유언대용신탁 |
|---|---|---|
| 효력 발생 시점 | 사망 시 | 계약 체결 시(수익권 이전은 사망 시) |
| 방식 요건 | 자필증서 등 법정 방식, 요건 미비 시 무효 | 신탁계약서로 비교적 자유롭게 설계 |
| 생전 재산관리 | 불가능 | 가능(수탁자가 관리·운용) |
| 변경 가능성 | 새 유언으로 언제든 변경·철회 가능 | 신탁행위로 달리 정하지 않으면 위탁자가 변경 가능 |
| 유류분 반환 대상 여부 | 대상 | 하급심 판단 엇갈림, 대법원 확정 전 |
방식 요건과 생전 관리 측면에서는 신탁이 실무적으로 편리합니다. 그러나 사망 후 상속인 간 분쟁을 완전히 막아주는 제도는 아닙니다.
상속세를 실제로 줄이려면 필요한 3가지 설계 요건
신탁 자체는 절세 도구가 아니지만, 신탁을 활용한 재산 설계 전체를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세부담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첫째, 사전증여를 병행해야 합니다. 생전에 배우자와 자녀에게 증여재산공제 한도 내에서 나누어 증여하면 신탁에 남기는 재산 규모 자체가 줄어들고, 10년 단위로 공제가 갱신되므로 장기간에 걸쳐 설계할수록 효과가 커집니다.
둘째, 유류분 비율을 고려해 수익자별 배분을 정해야 합니다. 유류분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이며, 특정 상속인에게 재산을 몰아주는 신탁 설계는 이 비율을 침해할 가능성이 큽니다.
셋째, 사후수익자와 배분 비율을 신탁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시해 권리관계를 조기에 확정해야 합니다. 모호한 조항은 상속 개시 후 해석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주의할 점 — 유류분 분쟁과 신탁 무효 리스크
유언대용신탁이 유류분 반환 대상이 되는지는 아직 법원 판단이 통일돼 있지 않습니다. 신탁재산을 상속인이 아닌 수탁자(신탁회사)가 보유한다는 이유로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서 제외된다고 본 하급심 판결이 있는 반면, 최근에는 신탁을 통한 재산 이전을 실질적인 무상이전으로 보아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 포함된다고 판단하는 판결도 늘고 있습니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특정 상속인에게 재산 대부분을 몰아주는 신탁을 설계하면, 다른 상속인이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소송이 시작되면 신탁계약 자체의 유효성까지 다투는 경우가 많아 분쟁 기간이 길어집니다.
유언대용신탁은 상속세를 줄여주는 절세 상품이 아니라, 재산 이전 절차를 설계하는 도구입니다.
신탁 자체가 세금을 깎아주지는 않지만, 사전증여와 유류분 검토를 함께 설계하면 세부담과 분쟁 위험을 동시에 낮출 수 있습니다. 신탁계약서 문구 하나가 훗날 유류분 소송의 쟁점이 될 수 있는 만큼,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세무와 법률 양쪽에서 교차 검토를 거치는 것이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