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계약이 끝났는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이 상가 셔터를 내리고 열쇠만 쥔 채 나가지 않는 상황, 실제 상담에서 매달 한두 건씩 들어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기간의 관리비는 원칙적으로 임대인이 부담합니다. 임차인이 목적물을 점유하고 있어도 실제로 영업하거나 사용하지 않았다면, 점유 자체만으로는 관리비를 낼 의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입장입니다. 다만 이 원칙이 모든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임차인의 행동과 임대인의 대응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뒤집히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관리비 부담을 가르는 기준은 "누가 점유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실제로 사용·수익했는가"입니다. 셔터를 내리고 영업을 중단한 채 열쇠만 쥐고 있는 점유는 원칙적으로 관리비 부담을 발생시키지 않습니다.
보증금을 못 받은 임차인이 상가를 잠가도 불법점유가 아닌 이유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면 임차인의 목적물 반환의무와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의무가 동시에 발생합니다. 민법 제536조는 이 두 의무를 동시이행 관계로 규정하는데, 임대인이 보증금을 실제로 돌려주거나 최소한 적법하게 반환하겠다고 이행제공을 하지 않는 이상, 임차인은 "보증금을 받기 전까지는 상가를 비워주지 않겠다"고 버틸 권리를 가집니다. 법률에서는 이를 동시이행항변권이라고 부릅니다.
대법원은 이 지점을 오래전부터 명확히 정리해 왔습니다. 임대인이 보증금 반환의무를 이행하거나 적법하게 이행제공을 해서 임차인의 동시이행항변권을 상실시키지 않은 이상, 임대차 종료 후 임차인이 목적물을 계속 점유하더라도 그 점유는 불법점유가 아니며 임차인은 이에 대한 손해배상 의무를 지지 않습니다. 셔터를 내리고 영업을 하지 않는 상태로 열쇠만 쥐고 있는 것도 이 논리 안에서는 정당한 권리 행사입니다.
관리비 부담이 갈리는 진짜 기준은 점유가 아니라 사용·수익 여부
관리비를 누가 내는지는 임차인이 상가를 "점유"했는지가 아니라 "사용·수익"했는지로 결정됩니다. 대법원 2021. 4. 1. 선고 2020다286102(본소), 2020다286119(반소) 판결은 이 기준을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임대차 종료 후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차인이 임대차목적물을 사용·수익하지 않고 점유만 계속하고 있는 경우라면, 목적물을 인도할 때까지의 관리비는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임차인이 계약 종료 후 실제로 행사를 열어 사용한 이틀치 관리비만 임차인 부담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기간의 관리비는 임대인 부담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원칙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되는 사안에서도 그대로 확인됩니다. 대법원 2023. 11. 9. 선고 2023다257600 판결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적용 대상인 상가의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전 목적물을 점유하고 있더라도, 실제로 사용·수익하지 않았다면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재확인했습니다. 점유와 사용·수익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이 판례로 굳어진 셈입니다.
| 구분 | 단순 점유(미사용) | 실질적 사용·수익 |
|---|---|---|
| 영업 상태 | 폐업·휴업, 셔터 다운 | 영업 계속 또는 물건 보관·전시 |
| 관리비 부담 | 임대인 | 임차인(실사용 기간분) |
| 전기·수도 실사용료 | 사용량 미미, 분쟁 소지 적음 | 실사용량만큼 별도 정산 |
| 법적 근거 | 대법원 2020다286102 판결 | 임대차계약상 차임·관리비 지급의무 지속 |
실무에서 "단순 점유"로 인정받으려면 무엇을 갖춰야 하나
임차인이 관리비를 면하려면 "점유만 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합니다. 법원이 알아서 확인해주는 것이 아니라, 폐업신고서·전기 사용량 내역·간판 철거 사진 같은 객관적 자료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다툼에서 유리해집니다.
실제 상담에서 자주 보는 사례가 있습니다. 강남구 소재 전용면적 33㎡(10평) 남짓한 1층 카페 자리로, 보증금 8,000만 원에 월세 220만 원, 월 관리비 30만 원(공용관리비 18만 원과 전용부분 실사용료 12만 원으로 구성)짜리 계약이었습니다. 2026년 3월 31일 계약이 종료됐지만 임대인이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반환하지 못했고, 임차인은 폐업신고를 마치고 간판을 철거한 뒤 셔터를 내린 채 6개월간 점유를 이어갔습니다. 이 기간 관리사무소는 관리비 180만 원(30만 원×6개월)을 계속 임차인 명의로 청구했고, 임대인은 처음에 이 금액을 보증금에서 공제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임차인이 폐업신고 확인서와 전기 사용량 내역(월 1만 원 미만으로 사실상 미사용)을 제시하며 다투자, 임대인은 결국 공제 방침을 철회했습니다.
여기서 실무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간판을 철거해도 냉장고나 집기 같은 재고를 상가 안에 그대로 남겨두면 "보관 목적의 사용"으로 평가될 여지가 남는다는 점입니다. 완전한 미사용을 인정받으려면 물건을 반출하거나, 반출하지 못했다면 최소한 임대인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보관에 동의를 받아두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아무 통지 없이 물건만 방치한 채 잠가두는 것과, 반출 계획을 임대인에게 알린 뒤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다르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 영업 중단 상태를 객관적 자료로 증명 — 폐업신고 확인서, 간판 철거 사진, 전기·가스 사용량이 급감한 내역을 미리 확보해 둡니다.
- 점유 중단 의사를 임대인에게 통지 — 명도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내용증명 등 서면으로 남겨두면 이후 분쟁에서 유리합니다.
- 물건 반출·보관에 대해 임대인과 소통 — 무단 방치와 통지된 보관은 다르게 평가됩니다.
관리비 부담이 임대인에게 넘어가도 방심할 수 없는 이유
관리비 부담이 임대인에게 있다고 해서 임차인이 무한정 버텨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판례는 보증금에서 연체차임 등을 계속 공제하다가 그 잔액이 모두 소진되는 시점부터는 임차인이 동시이행항변권을 상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 이후의 점유는 더 이상 적법한 권리 행사로 보호받기 어려워지고, 불법점유로 전환될 여지가 생깁니다.
같은 사례로 계산해보면 분기점이 분명해집니다. 보증금 8,000만 원짜리 계약에서 계약기간 중 차임을 완납한 상태였다면, 6개월간 관리비 180만 원이 쌓여도 보증금 잔액은 7,820만 원으로 여전히 넉넉하게 남아 있으므로 동시이행항변권도 그대로 유지되고 관리비는 계속 임대인 부담입니다. 반대로 계약기간 중 연체차임이 3,000만 원 쌓여 있었고, 계속 점유로 인한 차임 상당 손해까지 더해져 보증금 8,000만 원이 모두 잠식되는 시점이 온다면, 그 이후 기간은 항변권을 상실한 것으로 평가돼 그때부터 발생하는 관리비와 차임 상당액은 임차인이 배상해야 할 손해로 성격이 바뀔 수 있습니다.
임대인이 보증금 반환을 이행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명도소송이나 손해배상부터 준비하면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공탁이나 내용증명 등으로 이행제공 사실을 먼저 확보해야 이후 관리비·손해배상 청구에서 유리한 근거가 됩니다.
관리비는 점유의 대가가 아니라 사용의 대가입니다.
임대차 종료 후 공실 상태의 관리비 정산은 건물주 입장에서 매달 반복되는 실무 이슈입니다. 안택스 에셋은 임차인의 점유 상태와 사용 흔적을 확인하는 절차부터 관리비 정산 근거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까지, 분쟁이 소송으로 번지기 전에 정리할 수 있는 지점을 함께 짚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