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병원비나 사업자금이 필요해 부모에게 돈을 빌리는 경우, 차용증부터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끼리 돈 문제로 서류까지 챙기는 게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 뒤 재산 취득자금 출처조사나 사업체 세무조사 과정에서 그 계좌이체 내역이 그대로 드러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차용증 없이 받은 부모의 돈은 세무조사에서 원칙적으로 증여로 추정되고, 실제 빌린 돈이었다는 사실은 자녀가 직접 입증해야 한다. 이 글은 그 입증책임 구조와 세무조사에서 실제로 요구하는 소명 자료, 원금 규모별 예상 증여세까지 2026년 기준으로 정리한다.
차용증이 없는 부모 자녀 간 금전거래는 상증세법 제45조에 따라 증여로 추정됩니다. 계좌이체 기록만으로는 부족하고, 이자 지급·원금 상환·채무자의 소득 능력까지 함께 소명해야 증여 추정이 깨집니다.
부모 자식 간 돈거래는 왜 원칙적으로 증여로 추정되는가
직계존비속 간 금전거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재산취득자금 등의 증여추정)에 따라 국세청이 증여 사실을 따로 입증하지 않아도 일단 증여로 추정한다. 원래 증여세는 과세관청이 증여 사실을 입증해야 부과할 수 있지만, 제45조가 적용되는 순간 입증책임이 뒤집힌다. 재산 취득자의 직업, 연령, 소득, 재산 상태로 볼 때 자력으로 취득했다고 보기 어려우면 취득자금 자체를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하는데, 부모가 자녀 계좌로 목돈을 보낸 사실 자체가 이 추정의 출발점이 된다.
이 추정을 깨는 통로는 시행령 제34조가 정한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취득자금 출처에 대한 충분한 소명이고, 다른 하나는 입증하지 못한 금액이 취득자금의 20%와 2억원 중 적은 금액에 못 미치는 경우다. 실무에서는 취득자금이 10억원 미만이면 출처의 80% 이상을 밝히면 전체를 소명한 것으로 보고, 10억원 이상이면 밝히지 못한 금액이 2억원 미만일 때 전체를 소명한 것으로 처리한다.
여기서 실무자들이 자주 놓치는 부분이 있다. 80%·2억원 기준은 원래 급여나 임대료처럼 스스로 마련한 자금 출처를 소명할 때 쓰는 규정이고, 국세청은 직계존비속 간 금전거래에는 이 기준을 곧바로 적용하지 않는 편이다. "80%만 밝히면 된다"는 통념을 부모 자녀 간 차입에 그대로 대입하면 오산이다. 부모 돈이라면 처음부터 실제 대여였음을 별도로 입증해야 하는, 좀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고 보는 편이 안전하다.
차용증 있는 차입과 없는 이체, 세무조사에서는 어떻게 다르게 보는가
세무조사 현장에서는 차용증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계좌이체 내역, 이자 지급 기록, 원금 상환 이력, 채무자의 소득 능력을 함께 요구한다.
실제 상담에서 자주 보는 사례로, 자영업자가 사업 운영자금이 급해 부모로부터 8천만원을 계좌로 받고 구두로만 "나중에 갚겠다"고 약속하는 경우가 있다. 3~4년 뒤 사업장 세무조사에서 해당 입금이 매출 누락이 아닌 가족 간 이체로 확인되면, 조사관은 그 즉시 증여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로 넘어간다. 차용증이 없으면 소명 자료 자체가 없는 셈이어서, 원금 8천만원 전액이 증여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
| 구분 | 요건을 갖춘 차입 | 차용증 없는 이체 |
|---|---|---|
| 금전소비대차 계약서 | 있음(확정일자·공증) | 없음 |
| 이자 약정 및 지급 | 연 4.6% 이하 약정, 계좌이체 기록 | 없음(무상 이전으로 봄) |
| 원금 상환 | 정기 상환 계좌이체 이력 | 상환 이력 없음 |
| 세무조사 결과 | 실제 차입으로 인정, 증여세 없음 | 원금 전액 증여로 추정 |
원금 규모별로 증여세는 얼마나 차이 나는가
구체적인 숫자로 보면 체감이 다르다. 자녀가 사업자금으로 부모에게 3억원을 차용증 없이 받았다가 세무조사에서 증여로 확정됐다고 가정해 보자. 증여재산가액 3억원에서 성인 자녀의 증여재산공제 5천만원(10년 합산 기준)을 차감하면 과세표준은 2억5천만원이다.
| 과세표준 | 세율 | 누진공제 |
|---|---|---|
| 1억원 이하 | 10% | - |
| 1억원 초과 ~ 5억원 이하 | 20% | 1천만원 |
| 5억원 초과 ~ 10억원 이하 | 30% | 6천만원 |
| 10억원 초과 ~ 30억원 이하 | 40% | 1억6천만원 |
| 30억원 초과 | 50% | 4억6천만원 |
과세표준 2억5천만원은 20% 구간에 해당해 산출세액은 2억5천만원×20%-1천만원=4천만원이다. 세무조사로 뒤늦게 발견돼 애초 신고 자체가 없었던 것이므로 무신고가산세 20%(800만원)가 붙는다. 신고기한을 지나 1년 뒤 적발됐다고 가정하면 납부지연가산세는 하루 0.022%씩 365일치, 약 321만원이 더해진다. 세 항목을 합치면 총 납부세액은 약 5,121만원으로, 원금 3억원의 17% 안팎이 세금으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첫째, 원금이 5천만원 이하라면 증여재산공제로 세액 자체는 0원이 될 수 있다. 다만 증여로 일단 확정되면 10년간 합산 과세 대상에 포함되어, 이후 추가로 받을 공제 여력이 줄어든다는 점은 감수해야 한다.
둘째, 원금이 5천만원을 넘고 2~3억원대라면 세액 부담이 본격적으로 발생한다. 위 계산 예시처럼 3억원이면 산출세액만 4천만원 수준이고, 가산세까지 더하면 원금의 15~20%가 세금으로 나간다.
셋째, 원금이 5억원을 넘는다면 세율 구간이 30%로 올라가고 누진공제도 커진다. 이 구간부터는 세무조사 통지를 받은 시점에 뒤늦게 소명자료를 짜맞추기보다,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가산세 감면 여지가 있는 수정신고를 검토하는 편이 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다만 정확한 감면율은 시점과 사안마다 다르므로 전문가 확인이 필요하다.
2억원 무이자 룰과 사후 작성 차용증, 흔히 하는 오해 두 가지
부모 자녀 간 금전거래를 다루다 보면 두 가지 오해가 반복된다. 하나는 "2억원까지는 무이자로 빌려도 안전하다"는 말을 원금 자체에도 적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중에라도 차용증을 쓰면 된다"는 생각이다.
2억원 기준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1조의4(금전 무상대출 등에 따른 이익의 증여)에서 나온다. 적정이자율 연 4.6%로 계산한 이자와 실제 지급이자의 차액이 연간 1천만원에 못 미치면 그 이자 상당액은 과세하지 않는다는 규정인데, 원금 약 2억1,739만원까지는 이 계산상 차액이 1천만원 미만이라 실무에서 흔히 "2억원 룰"로 불린다. 그런데 이 규정은 애초에 실제 대여 관계가 인정된다는 전제 위에서 작동한다. 원금 자체가 증여인지 아닌지는 제45조가 따로 판단하는 별개의 층위다.
2억원 이하 무이자 대출이라는 이유만으로 원금 자체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차용증 없이 이체된 돈은 금액과 무관하게 상증세법 제45조의 증여 추정 대상이 됩니다.
두 번째 오해인 사후 작성 차용증도 마찬가지다. 세무조사 통지를 받은 뒤 부랴부랴 차용증을 쓰는 경우가 실무에서 적지 않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작성 시점이다. 확정일자나 공증, 내용증명처럼 시점을 객관적으로 남기지 않은 차용증은 조사관 입장에서 사후에 급조한 서류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자를 실제로 지급한 계좌 기록이나 원금 상환 이력 같은 정황증거가 함께 없다면, 뒤늦게 쓴 차용증 한 장만으로 증여 추정을 뒤집기는 어렵다.
차용증 한 장의 유무가 같은 금액을 증여로 만들기도, 대여로 남기기도 한다.
부모 자녀 간 금전거래는 액수와 무관하게 원칙적으로 증여 추정에서 출발한다. 급한 사정으로 차용증을 챙기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확정일자와 이자 지급, 상환 계획을 갖춰 실제 대여 관계임을 명확히 남겨두는 편이 세무조사 국면에서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