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을 중단하지 않고 추운 매장에서 그대로 버텼다고 해서 감액 청구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난방시설 고장으로 사용·수익에 지장을 받은 기간에 대해 그 지장 비율만큼 월세 감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근거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아니라 민법 제623조와 제627조입니다. 전액 감액은 매장 문을 아예 닫아야 할 정도로 사용이 불가능했던 경우에만 인정되고, 영업을 계속한 경우라면 지장 정도를 얼마로 볼 것인지가 실제 다툼의 핵심이 됩니다.
난방시설 고장 중에도 영업을 계속했다면 차임 전액이 아니라 사용·수익 지장 비율만큼만 감액 청구가 가능합니다. 상가임대차법 제11조의 차임감액청구권과는 근거 조문 자체가 다르며, 민법 제623조·제627조가 이번 사안의 직접적인 근거입니다.
난방시설 고장, 임대인은 어디까지 책임지는가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에게 계약 존속 중 목적물을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할 의무를 지웁니다. 건물 전체를 데우는 중앙난방설비나 공용 냉난방시스템은 대부분 임대인 소유·관리 영역에 속하므로, 이 설비가 고장 나면 일차적으로 임대인의 수선의무 위반 문제가 됩니다. 반대로 임차인이 직접 설치한 개별 냉난방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므로, 고장 난 설비가 건물 공용설비인지 임차인 소유물인지부터 구분해야 합니다.
임차인에게도 의무가 있습니다. 민법 제634조는 임대인의 부담에 속하는 수선 사유가 발생하면 임차인이 지체 없이 임대인에게 통지하도록 정합니다. 고장을 발견하고도 며칠씩 알리지 않은 채 참고 영업했다면, 통지 이전 기간에 대한 감액 인정 범위는 좁아질 수 있습니다. 문자메시지든 관리사무소 접수든, 통지 시점을 남기는 것이 감액 청구의 출발점입니다.
가장 먼저 구분해야 할 기준은 사용·수익이 아예 불가능했는지, 아니면 부분적으로 지장이 있었는지입니다. 대법원은 임대인이 목적물을 사용·수익하게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임차인이 목적물을 전혀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차임 전부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지만, 사용·수익이 부분적으로 지장이 있는 상태라면 그 지장의 한도 내에서만 차임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1997. 4. 25. 선고 96다44778 판결). 추운 매장에서 그대로 영업했다는 것은 후자, 즉 부분적 지장에 해당합니다.
상가임대차법 제11조와 헷갈리면 안 되는 이유
차임 감액이라고 하면 대부분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1조의 증감청구권부터 떠올립니다. 그런데 이 조항은 조세·공과금 증가나 제1급감염병 등 경제 사정 변동에 따른 감액을 규정한 것이지, 시설 하자로 사용에 지장이 생긴 이번 같은 경우를 겨냥한 조문이 아닙니다. 실제로 임대인 쪽에서 "상가임대차법에는 시설 고장으로 인한 감액 규정이 없다"고 반박하는 사례를 자주 보는데, 이는 애초에 조문을 잘못 짚은 것입니다. 이번 사안의 근거는 민법 제623조·제627조이고, 이 조항들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적용 대상인지와 무관하게 모든 임대차에 적용됩니다.
이 구분이 실무에서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환산보증금이 높아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갱신요구권이나 우선변제권을 받지 못하는 임차인이라도, 민법상 감액청구권까지 함께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임차인은 보증금이 커서 법 보호를 못 받는다"는 판단과 "그러니 시설 고장에 대한 감액 청구도 못 한다"는 판단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 구분 | 민법 제623조·제627조 (이번 사안) | 상가임대차법 제11조 |
|---|---|---|
| 감액 청구 원인 | 시설 고장 등 사용·수익 지장 | 조세·공과금 증가, 감염병 등 경제 사정 변동 |
| 적용 범위 | 보증금 규모와 무관, 모든 임대차 | 상가임대차법 적용 대상 임대차 |
| 감액 산정 기준 | 사용·수익 지장 비율 (개별 판단) | 경제 사정 변동 폭 (개별 판단) |
| 불리한 특약의 효력 | 강행규정, 특약으로 배제 불가(제652조) | 임차인에게 불리한 약정 제한 |
감액 비율은 어떻게 정해지고, 실제로 얼마나 깎이는가
정해진 산식은 없습니다. 조정위원회나 법원은 고장 지속 기간, 지장 정도, 통지 이행 시점 세 가지를 함께 보고 개별적으로 지장 비율을 판단합니다. 셋 중 하나라도 기록이 부실하면 임차인이 원하는 만큼의 비율을 인정받기 어려워집니다.
실무에서 자주 보는 유형으로 계산해 보면 감이 잡힙니다. 강남 소재 15평 커피전문점, 월 차임 350만 원, 건물 중앙난방설비의 부품 고장으로 11일간 실내온도가 10도 이하로 유지된 사례입니다. 임차인은 고장 당일 관리사무소에 문자로 통지하고 실내온도와 매장 사진을 남겼습니다. 임대인은 부품 수급 문제로 11일이 지나서야 수선을 마쳤고, 이 기간 카드매출은 전월 같은 요일 대비 35% 줄었습니다.
| 계산 단계 | 내용 | 금액 |
|---|---|---|
| ① 1일 차임 | 월 차임 350만 원 ÷ 30일 | 116,667원 |
| ② 고장기간 차임 총액 | 116,667원 × 11일 | 1,283,337원 |
| ③ 지장 비율 협의 | 매출감소·온도기록·통지시점 종합 | 30% 수준 |
| ④ 감액 청구 금액 | 1,283,337원 × 30% | 약 385,000원 |
위 30%는 통지와 기록이 충실했던 사례를 단순화한 예시일 뿐, 법령이나 고시로 정해진 비율이 아닙니다. 지장 비율은 사건마다 다르게 판단되므로, 실제 청구 전에는 조정위원회 상담이나 변호사 확인을 거치는 것이 안전합니다.
특약으로 책임을 피할 수 있을까 — 통지와 증거가 관건
임대차 계약서에 "설비 고장에 대해 임대인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구가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 제623조의 수선의무 자체는 임의규정이라 특약으로 면제하거나 임차인 부담으로 돌릴 수 있지만, 대법원은 그런 특약으로 면제되는 범위를 통상적인 소규모 수선에 한정하고, 대파손 수리나 건물의 기본적 설비 교체 같은 대규모 수선은 특약이 있어도 여전히 임대인이 부담한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12. 6. 14. 선고 2010다89876, 89883 판결). 건물 전체를 데우는 중앙난방설비는 전형적으로 이 기본적 설비에 해당하므로, 웬만한 면책 특약으로는 빠져나가기 어렵습니다.
설령 계약서에 감액 청구 자체를 못 하게 막는 조항을 넣더라도 그 조항은 무효입니다. 민법 제627조는 제652조가 정한 강행규정 목록에 포함돼 있어, 임차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이 권리를 배제하는 약정은 효력이 없습니다. "수선의무를 면제하는 특약"과 "이미 발생한 감액청구권을 포기시키는 특약"은 서로 다른 문제이고, 후자는 계약서에 어떻게 적혀 있든 임차인에게 불리한 범위에서 무효라는 점을 건물주도 알아야 분쟁을 줄일 수 있습니다.
거부당했을 때의 절차도 순서가 있습니다. 첫째, 고장 발생일과 통지 일시, 실내온도 기록, 매출 자료를 정리해 내용증명으로 감액을 요구합니다. 둘째, 임대인이 응하지 않으면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합니다. 셋째, 조정이 성립하지 않으면 민사소송으로 넘어갑니다. 조정은 신청일로부터 60일 이내 처리가 원칙이고 부득이한 경우 30일 범위에서 연장되므로, 소송보다 시간과 비용 부담이 적은 편입니다.
설비 고장에 대한 차임 감액은 임차인의 권리이자, 건물주에게는 관리 공백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난방시설 고장으로 인한 감액 청구는 결국 건물주가 시설 이상을 얼마나 빨리 파악하고 수선했는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통지를 받고도 부품 수급 등의 이유로 수선이 늦어지면 감액 청구 금액은 계속 늘어나고, 임차인과의 신뢰도 함께 무너집니다. 빌딩의 기본 설비 이력과 점검 주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이런 분쟁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