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에게서 "천장에서 물이 샌다"거나 "에어컨이 갑자기 멈췄다"는 연락을 받으면, 건물주는 곧바로 두 가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걸 내가 고쳐줘야 하는지, 그리고 고쳐준다면 어디까지가 내 책임인지입니다. 계약서에 "시설 관리는 임차인 책임"이라는 문구를 넣어뒀다고 해서 모든 고장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민법이 정한 임대인의 수선의무 범위와 누수·냉난방 고장의 구체적 판단 기준, 특약이 유효하게 인정되는 조건, 그리고 임대인이 수선을 미룰 때 임차인이 쓸 수 있는 조치까지 2026년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임대인의 수선의무는 파손의 규모로 갈립니다. 임차인이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소규모 파손은 임차인 부담이지만, 건물 구조나 기본 설비의 핵심 기능을 막는 대규모 파손은 계약서에 어떤 문구가 있든 원칙적으로 임대인이 책임집니다. 특약으로 이를 임차인에게 넘기려면 수선 대상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임대인의 수선의무란 — 민법이 정한 범위와 판단 기준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목적물을 인도하고, 계약이 존속하는 동안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하게 할 의무를 진다고 정합니다. 계약서에 별다른 문구가 없어도 건물주는 법률상 이 수선의무를 지고 있으며, 실무에서 다투는 지점은 의무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어디까지'입니다.
대법원은 파손이나 장해가 임차인이 별도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사소한 정도여서 사용·수익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부담하지 않지만,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임차인이 계약 목적대로 사용·수익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판단은 목적물의 종류와 용도, 파손의 규모와 부위, 사용·수익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 수선의 난이도와 비용, 계약 당시 목적물의 상태와 차임 액수 등을 종합해 사회통념에 따라 가립니다.
임대인이 부담하는 대규모 수선
건물 주요 구조부의 파손, 방수층 손상으로 인한 누수, 냉난방 설비의 핵심 부품 고장처럼 사용·수익 자체를 막는 문제는 대규모 수선으로 분류되어 임대인이 책임집니다.
임차인이 부담하는 소규모 수선
전등 교체, 문손잡이 수리, 냉난방기 필터 청소, 단순 냉매가스 보충처럼 임차인이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통상적인 파손은 임차인이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누수·냉난방 고장,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임대인 책임인가
실제 분쟁에서는 원인 규명이 관건입니다. 법원은 문제의 원인이 누구의 관리·지배 영역에서 발생했는지를 먼저 봅니다. 건물 자체의 노후나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 문제라면 임대인 책임이고,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물이나 임차인의 사용 과정에서 생긴 손상이라면 임차인 책임입니다.
누수의 경우 옥상 방수층 노후, 배관 자체의 부식·파열, 외벽 균열로 인한 침수는 건물 구조의 하자이므로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집니다. 반면 임차인이 설치한 급배수 시설이나 주방 설비의 시공 불량, 임차인의 부주의로 인한 누수는 임차인이 책임집니다. 냉난방의 경우 실외기 컴프레서 고장, 냉매 배관 노후로 인한 가스 누출, 실내기 메인보드 고장처럼 설비의 핵심 기능이 멈추는 문제는 대규모 수선으로 임대인 책임입니다. 반면 필터 청소, 리모컨 배터리 교체, 단순 냉매 보충처럼 소모품 성격의 경상 유지관리는 임차인이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구분 | 임대인 책임 (예시) | 임차인 책임 (예시) |
|---|---|---|
| 누수 | 옥상 방수층 노후, 배관 부식·파열, 외벽 균열 | 임차인 설치시설 시공불량, 사용 부주의로 인한 손상 |
| 냉난방 | 컴프레서·메인보드 등 핵심부품 고장, 냉매배관 노후 누출 | 필터 청소, 리모컨 배터리, 단순 냉매 보충 |
| 판단 기준 | 건물 구조·기본설비의 하자 여부 | 임차인 관리 소홀·통상 소모품 여부 |
수선의무 면제 특약, 어디까지 유효한가
많은 임대차 계약서에 "임차인이 시설을 원상태로 유지·관리한다"거나 "설비 고장은 임차인이 책임진다"는 특약이 들어갑니다. 이런 특약 자체는 유효하지만, 대법원은 특약에서 수선의무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한 그 특약의 효력은 통상적으로 생길 수 있는 소규모 파손의 수선에만 미친다고 판시했습니다. 즉 "설비 고장은 임차인 책임"이라는 한 줄만으로는 컴프레서 고장이나 배관 파열 같은 대규모 수선까지 임차인에게 떠넘길 수 없습니다.
특약이 대규모 수선까지 임차인 부담으로 유효하게 인정받으려면, 계약서에 어떤 항목의 고장이나 파손을 임차인이 부담하는지 구체적으로 열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냉난방 설비의 컴프레서·실외기·배관을 포함한 전체 유지보수 비용은 임차인이 부담한다"처럼 대상과 범위를 특정해야 대규모 수선에도 특약의 효력이 미칠 가능성이 커집니다.
계약서에 "시설물 유지보수는 임차인 책임"이라는 문구만 있고 구체적 항목이 없다면, 누수·냉난방 등 대규모 수선 비용을 임차인에게 청구해도 법원에서 무효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특약으로 넘기려면 대상 설비와 고장 유형을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임대인이 수선하지 않을 때 임차인이 쓸 수 있는 조치
건물주가 함께 알아둬야 할 것은, 반대로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임차인이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입니다. 민법 제634조는 임차인이 수선이 필요한 사실을 지체없이 임대인에게 통지해야 한다고 정하고, 이 통지를 받고도 임대인이 상당한 기간 안에 수선하지 않으면 임차인은 여러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첫째, 수선이 끝날 때까지 차임의 전부 또는 일부 지급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둘째, 민법 제627조에 따라 사용·수익할 수 없는 부분의 비율만큼 차임 감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셋째, 남은 부분만으로는 임대차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넷째, 수선 지연으로 발생한 영업손실 등 손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조치 | 요건 | 근거 |
|---|---|---|
| 차임 지급 거절 | 수선 미이행 상태 지속 | 민법 제623조 해석상 인정 |
| 차임 감액청구 | 임차인 과실 없이 일부 사용·수익 불가 | 민법 제627조 제1항 |
| 계약 해지 | 잔존 부분으로 임대차 목적 달성 불가 | 민법 제627조 제2항 |
| 손해배상청구 | 수선 지연으로 실제 손해 발생 | 민법 제390조(채무불이행) |
수선의무는 계약서 한 줄이 아니라 파손의 규모로 결정됩니다.
임대인이 수선의무 범위를 미리 이해하고 특약을 구체적으로 설계해두면, 누수나 냉난방 고장이 생겼을 때 책임 소재를 둘러싼 분쟁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안택스 에셋은 빌딩 임대차 계약 설계와 시설 관리 과정에서 이런 수선의무 범위를 함께 점검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건물주의 실무 판단을 짚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