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마포권 중소형 상가 건물을 인수한 뒤 관리업체부터 바꾸려는 자산가들이 자주 놓치는 지점이 있습니다. 지금 위탁관리계약을 누구 이름으로, 어떤 절차로 맺었는지입니다. 관리인이 개인 명의로 도장을 찍고 관리단집회는 형식적으로만 열렸거나 아예 열리지 않았다면, 그 계약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계약일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2024년 9월 27일 선고한 2023다287861 판결에서 이 문제에 명확한 기준을 세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관리인이 관리단집회 결의 없이 체결한 공용부분 위탁관리계약은 무효입니다. 관리인은 관리단집회가 정한 사항을 집행하는 자리이지, 관리 방법 자체를 혼자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대법원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관리인 혼자 처리해도 되는 일과 반드시 관리단집회를 거쳐야 하는 일의 경계가 어디인지, 계약이 무효로 확인됐을 때 실제로 어떤 정산 문제가 생기는지를 2026년 기준 집합건물법 조문과 함께 정리합니다.
관리인이 단독으로 서명한 위탁관리계약은 관리단집회 결의가 없으면 원칙적으로 효력이 없습니다. 관리인은 결의된 사항을 집행할 권한만 가지며, 계약 체결 여부 자체를 스스로 결정할 권한은 없습니다.
관리인은 왜 위탁관리계약을 혼자 결정할 수 없는가
관리인에게는 애초에 그런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집합건물법은 관리단·관리단집회·관리인을 각각 다른 역할로 분리해 놓았습니다. 구분소유자가 10인 이상인 건물이 구분소유로 등기되는 순간 관리단은 별도의 설립 절차 없이 당연히 성립합니다(제23조). 관리단의 의사결정은 법이나 규약으로 관리인에게 위임한 사항을 제외하면 전부 관리단집회의 결의로 이루어지고(제31조), 관리인은 그 결의를 대표해서 집행하는 자리일 뿐입니다(제24조·제25조).
여기서 실무자들이 자주 오해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관리인이 건물을 대표한다"는 말을 "관리인이 건물 관리 방법을 결정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경우입니다. 대표권과 결정권은 다릅니다. 관리인은 관리단집회에서 이미 결정된 사항을 대외적으로 실행할 권한을 가질 뿐, 위탁관리계약처럼 앞으로의 관리 방법 자체를 정하는 일은 원래부터 관리인의 권한 밖에 있습니다.
관리인 혼자 처리해도 되는 일과 반드시 관리단집회를 거쳐야 하는 일은 다릅니다
기준은 그 조치가 '현상을 유지하는 것'인지 '관리 방법을 새로 정하는 것'인지입니다. 배관이 터지거나 소방설비가 고장 나서 방치하면 피해가 커지는 상황이라면, 관리인은 관리단집회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수리 업체를 불러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보존행위는 관리인의 고유 권한입니다. 반대로 위탁관리계약 체결이나 해지, 관리업체 교체처럼 앞으로 건물을 어떻게 운영할지를 정하는 일은 관리행위로 분류되어 관리단집회 결의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금액이 크고 작음이 기준이 아니라는 점이 실무에서 자주 놓치는 부분입니다. 월 관리위탁비가 소액이라도 위탁관리계약 자체를 새로 맺거나 갱신하는 행위는 관리 방법을 정하는 행위이므로 결의 대상입니다. 반대로 금액이 크더라도 당장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긴급 수리라면 보존행위로 인정될 여지가 있습니다.
| 구분 | 예시 행위 | 결정 주체 | 근거 조문 |
|---|---|---|---|
| 보존행위 | 배관 누수 긴급 수리, 소방·전기설비 긴급 교체 | 관리인 단독 가능 | 제25조 제1항 |
| 관리행위 | 위탁관리계약 체결·해지, 관리업체 변경 | 관리단집회 보통결의(과반수) | 제31조, 제38조 |
| 규약 설정·변경 | 관리규약 제정, 관리비 부과기준 변경 | 관리단집회 특별결의(4/5) | 제29조 |
| 서면결의(집회 미개최) | 집회 없이 위 사항을 서면으로만 결의 | 구분소유자·의결권 각 4/5 서면합의 | 제41조 |
표의 마지막 줄이 실무에서 흔히 오해하는 부분입니다. 관리단집회를 정식으로 열어 의결하면 구분소유자 및 의결권 각 과반수로 통과되는 사안인데, 집회를 아예 안 열고 서면으로만 처리하려고 하면 오히려 각 5분의 4 이상이라는 훨씬 높은 동의율이 필요해집니다. 집회 소집이 번거로워 서면결의로 우회하려다 정족수를 못 채우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실무에서 드물지 않습니다.
관리단집회 결의 없이 계약을 체결하면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계약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취급되면서, 돈 문제가 관리단이 아니라 구분소유자 개개인에게 넘어갑니다. 대법원 2023다287861 판결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집합건물 공용부분의 '관리에 관한 사항'은 규약에 달리 정함이 없는 한 관리단집회의 결의로 결정되어야 하고, 관리인은 그렇게 결의된 사항을 구체적으로 집행할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관리단규약에 별도 위임 규정이 없는데도 관리단집회를 거치지 않고 관리인이 체결한 위탁관리계약은 처음부터 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 상담에서 자주 보는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구분소유자 15명 규모의 강남권 상가형 집합건물에서, 분양 당시 관리인으로 지정된 인물이 그 뒤로도 관례적으로 관리인 명의를 유지하며 위탁관리업체와 2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왔습니다. 정식 관리단집회는 설립 이후 한 번도 소집된 적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건물을 매각하는 실사 단계에서 불거졌습니다. 매수인 측 법무팀이 "이 위탁관리계약이 애초에 유효한 계약인지" 문제를 제기하면서 거래 일정이 늦어졌고, 결국 매도인 측이 관리단집회를 뒤늦게 소집해 계약을 추인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습니다.
계약이 무효로 확인되면 위탁관리업체는 관리단을 상대로 계약에 따른 미지급 대금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대신 실제로 제공한 관리 용역에 대해서는 사무관리나 부당이득 법리에 따라 구분소유자 개개인을 상대로 별도 청구를 시도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청구 상대방이 한둘이 아니라 건물 안의 모든 구분소유자로 흩어집니다.
숫자로 보면 체감이 다릅니다. 월 위탁관리비 280만 원, 계약기간 24개월짜리 계약이라면 총 계약금액은 6,720만 원입니다. 계약 종료를 3개월 앞두고 이 계약이 무효라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가정하면, 이미 지난 21개월분은 지급이 끝났더라도 남은 3개월분 840만 원을 위탁관리업체가 관리단에 청구할 방법이 없어집니다. 대신 구분소유자 15명을 상대로 각자 실제 받은 관리 이익 상당액을 개별적으로 청구해야 하는데, 단순 산술로 나누면 1인당 56만 원 수준이라도 소송 상대가 15명으로 쪼개지면 소송 비용과 회수 가능성 모두 계약 한 건을 관리단에 청구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불리해집니다.
| 항목 | 내용 | 금액 |
|---|---|---|
| 월 위탁관리비 | 계약상 정액 관리비 | 280만 원 |
| 계약 총액 | 24개월 기준 | 6,720만 원 |
| 무효 확인 시 미지급 잔여분 | 남은 3개월분, 관리단 청구 불가 | 840만 원 |
| 구분소유자 개별 청구 시 | 15인 균등 가정, 소송 다수 분산 | 1인당 약 56만 원 |
그럼 중소형 빌딩은 위탁관리계약을 어떻게 체결해야 안전한가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 관리단집회 결의부터 만들어 두면 됩니다. 순서를 지키면 되는 문제이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첫째, 위탁관리계약을 체결하거나 갱신하기 전에 관리단집회를 소집해 안건으로 상정합니다. 정기 관리단집회를 기다리기 어렵다면 임시집회를 열어도 됩니다. 둘째, 구분소유자 과반수와 의결권 과반수를 동시에 충족하는 방식으로 결의를 확보합니다. 서면결의로 대체하려면 각 5분의 4 이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가능하면 실제 집회를 여는 쪽이 정족수 확보에 유리합니다. 셋째, 계약서 전문이나 별지에 결의 일자와 안건 내용을 명시해 둡니다. 나중에 계약의 유효성이 다시 문제 될 때, 결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계약서 자체로 입증할 수 있어야 분쟁이 줄어듭니다.
관리인의 도장은 결의를 집행하는 도구이지, 결의를 대신하는 도장이 아닙니다.
안택스 에셋이 빌딩 인수 실사나 관리업체 교체를 검토할 때 계약서 조항보다 먼저 확인하는 것이 관리단집회 의사록입니다. 계약 조건이 아무리 유리해도, 그 계약을 만든 절차가 비어 있으면 계약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