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이 나가면서 새 임차인을 직접 구해 왔는데, 건물주가 "이 상가는 내가 직접 쓸 계획"이라며 계약을 거절한 뒤 정작 몇 달, 길게는 1년 넘게 상가를 비워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임차인은 권리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나가야 하고, 건물주는 "내 건물을 내가 어떻게 쓰든 자유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판단은 위험합니다. 대법원은 이런 경우 대부분을 권리금 회수기회 방해로 보고 건물주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합니다. 예외로 인정받으려면 조건이 딱 두 가지인데, 실무에서 이 두 가지를 정확히 지키는 건물주는 드뭅니다. 이 글에서는 그 두 가지 요건이 무엇이고, "1년"과 "1년6개월"이 왜 결정적인 차이를 만드는지 정리했습니다.
"직접 쓰겠다"는 말만으로는 정당한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거절 시점에 "1년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쓰지 않겠다"고 명시하고, 실제로 그 기간을 지켜야만 손해배상 책임을 면합니다.
"직접 쓰겠다"는 한마디가 정당한 사유가 안 되는 이유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4 제1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과 계약 체결을 거절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여기서 "정당한 사유"는 건물주가 스스로 판단하는 개념이 아니라, 같은 조 제2항이 정한 네 가지 경우로 한정됩니다. 신규임차인의 보증금·차임 지급 능력이 부족한 경우, 신규임차인이 임차인 의무를 위반할 우려가 있는 경우, 상가건물을 1년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 임대인이 직접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임차인과 권리금 계약을 맺고 권리금을 지급한 경우, 이 네 가지뿐입니다.
"내가 직접 쓰겠다"는 말은 이 네 가지 중 어디에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항목은 세 번째, "1년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 조항은 단순히 건물주의 의사를 인정해주는 조항이 아니라, 뒤에서 설명할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적용되는 좁은 예외입니다. 건물주가 재판에서 "직접 쓸 생각이었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그 주장이 법이 정한 요건과 시점·내용 면에서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법원이 요구하는 두 가지 요건 — 시기적 요건과 실행 요건
이 쟁점을 정면으로 다룬 판결이 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19다285257 판결입니다. 임차인이 8년간 운영한 음식점을 넘기며 신규임차인과 권리금 계약을 맺고 건물주에게 계약 체결을 요청했는데, 건물주는 "건물이 낡아 재건축하거나 대수선할 계획"이라며 거절하고 이후 3년 가까이 상가를 비워뒀습니다. 대법원은 건물주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건물주가 내세운 사유가 "1년6개월 이상 비영리 사용"이 아니라 재건축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첫 번째 요건부터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판결이 정리한 기준은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만 충족해서는 부족합니다.
| 구분 | 요건 내용 | 미충족 시 |
|---|---|---|
| 시기적 요건 | 임대차 종료 시점에 "1년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쓰지 않겠다"는 사유를 명시적으로 밝힘 | 사유 자체가 무효, 손해배상 책임 확정 |
| 실행 요건 | 실제로 그 기간 동안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음 | 재임대·영업 재개 시점에 책임 확정 |
실제 상담에서 자주 보는 사례도 이 구도를 그대로 따릅니다. 임차인이 새 임차인과 권리금 9,000만 원에 계약하기로 하고 건물주에게 계약 체결을 요청했는데, 건물주는 "건물이 낡아 직접 리모델링해서 쓰겠다"고 구두로만 말했을 뿐, 통지서나 문자메시지 등 어떤 형태로도 "1년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쓰지 않겠다"는 취지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 시기적 요건이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이후 상가를 아무리 오래 비워둬도 예외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1년"과 "1년6개월", 6개월 차이가 왜 결정적인가
공실 기간이 1년을 넘겼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습니다. 법이 정한 기준은 1년6개월이고, 이 기준에 못 미치는 동안에는 건물주가 여전히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상태에 있습니다. 위 사례에서 상가가 1년 2개월째 비어 있다면, 아직 6개월이 더 남은 셈이지만 애초에 시기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으므로 그 6개월을 채우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실무적으로 분기점은 정확히 1년6개월입니다. 이 시점 이전에 어떤 형태로든 영리 목적으로 재임대하거나 건물주 스스로 영업을 재개하면, 거절 당시 사유를 제대로 명시했더라도 예외가 깨집니다. 손해배상액 산정도 구체적입니다. 앞의 사례를 그대로 이어가면, 신규임차인이 지급하기로 한 권리금 9,000만 원과 임대차 종료 당시 감정평가로 산출한 권리금 7,500만 원 중 낮은 금액인 7,500만 원이 배상액의 상한이 됩니다. 권리금 약정액이 더 높다고 해서 그 금액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재건축·철거를 이유로 들었을 때는 판단 기준이 다르다
건물주가 재건축이나 철거 계획을 이유로 신규임차인을 거절하는 경우는 "직접 쓰겠다"는 경우와 다른 잣대로 판단합니다. 대법원 2022. 8. 11. 선고 2022다202498 판결과 2024. 7. 31. 선고 2024다232530 판결은 신규임차인에게 재건축·철거 계획을 알린 것만으로는 원칙적으로 권리금 회수 방해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재건축을 별도의 갱신거절 사유로 인정하는 만큼, 그 계획을 미리 고지하는 행위 자체를 막을 이유는 없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이 판단이 무조건적인 면책은 아닙니다. 재건축의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지 않거나, 계획이 구체화되지 않았는데도 신규임차인에게 짧은 임대 기간만 확정적으로 제시하거나, 고지한 내용과 실제 행동이 모순되는 경우에는 권리금 회수 방해로 다시 인정됩니다. 정리하면 세 가지 조건이 함께 충족돼야 재건축 사유가 방어 논리로 성립합니다.
| 판단 요소 | 정당한 사유로 인정된 경우 | 권리금 회수 방해로 인정된 경우 |
|---|---|---|
| 재건축 필요성 | 노후도·구조 안전 등 객관적 근거 존재 | 근거 없이 계획만 주장 |
| 계획 구체성 | 시기·공법이 구체적으로 특정됨 | 막연히 "곧 재건축"이라고만 언급 |
| 고지와 행동 일치 | 고지한 일정대로 실제 재건축 진행 | 짧은 기간만 제시 후 실제로는 장기 임대 |
실무에서 자주 걸리는 함정은 신규임차인에게는 "재건축 예정이라 짧게만 임대 가능하다"고 말해두고, 정작 기존 임차인이 나간 뒤에는 리모델링만 마치고 더 높은 임대료로 새 임차인을 들이는 경우입니다. 법원은 이런 정황을 "고지 내용과 실제 행동의 모순"으로 보고 재건축 사유 자체를 부정합니다.
"직접 쓰겠다"거나 "재건축하겠다"는 말을 구두로만 하고 서면·문자메시지·내용증명 등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나중에 소송에서 "거절 당시 그 사유를 명시했다"는 사실 자체를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거절 사유는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권리금은 임차인이 만든 무형의 가치이고, 그 가치를 회수할 기회는 건물주의 "직접 쓰겠다"는 말 한마디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상가를 매입하거나 관리하는 과정에서 임차인 교체 시점은 건물주가 가장 큰 법적 리스크에 노출되는 구간입니다. 거절 사유를 어떻게 남기고 이후 공실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수천만 원대 손해배상 여부가 갈립니다. 안택스 에셋은 임차인 교체·공실 구간에서 이런 법적 리스크를 함께 점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