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1층 주차장에 세워둔 임차인 소유 전기차에서 불이 났다는 연락을 받으면, 상당수 건물주는 "내 잘못이 아니니 임차인이 알아서 처리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재로 옆자리 차량이 타거나 주차장 마감재가 손상되면, 피해자는 전기차 소유자가 아니라 건물주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화재의 직접 원인이 전기차에 있더라도 지하주차장 소방시설·전기설비 관리에 하자가 있었다면 건물주는 민법상 공작물책임을 별도로 집니다. 건물 규모에 따라서는 과실 유무와 무관하게 배상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기차 화재의 1차 책임은 차량 소유자인 임차인에게 있지만, 지하주차장 소방시설·전기설비의 설치·보존에 하자가 있었다면 건물주도 민법 758조 공작물책임으로 별도 배상책임을 집니다. 건물이 화재보험법상 특수건물에 해당하면 과실이 없어도 배상해야 합니다.
화재 나면 왜 '임차인 책임'만으로 끝나지 않는가
지하주차장 화재의 법적 책임은 '누구 차에서 불이 났는가'가 아니라 '불이 어디까지 번졌는가'에 따라 갈립니다. 전기차 소유자인 임차인이 자기 차량 안에서만 불을 냈다면 그 차량 손해는 임차인이 스스로 감당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화재가 주차장 전체로 번져 다른 임차인의 차량이나 건물 공용부분까지 태웠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대법원은 2017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임차 건물 화재 사건을 두 갈래로 나눠 증명책임을 다르게 봤습니다. 임차인이 직접 점유·사용하던 임차 전용부분의 손해는 임차인의 목적물 반환의무 위반 문제로 다뤄, 임차인이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사유였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배상책임을 집니다. 반면 임차 외 부분, 즉 지하주차장 같은 공용부분이나 다른 임차인의 재산에 미친 손해는 불법행위 책임으로 다뤄, 임차인에게 화재에 대한 잘못이 있었다는 것을 피해자 쪽이 증명해야 합니다.
실무에서 자주 오해하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전기차 화재는 대개 지하주차장이라는 공용부분에서 시작해 인접 차량이나 시설로 번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증명책임이 '임차인이 무과실을 증명'하는 쪽이 아니라 '피해자가 임차인의 잘못을 증명'하는 쪽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굳이 전기차 소유자의 과실만 파고들 필요가 없습니다. 지하주차장 관리자인 건물주를 상대로 공작물책임을 바로 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책임은 서로 다른 사람에게 각각 성립하는 부진정연대책임 관계여서, 피해자는 배상 능력이 더 확실한 쪽에 먼저 전액을 청구하고, 건물주와 임차인은 나중에 서로 잘못의 비율만큼 정산하게 됩니다.
| 구분 | 임차 전용부분 손해 | 임차 외 부분(공용부분 등) 손해 |
|---|---|---|
| 적용 법리 | 채무불이행(목적물 반환의무) | 불법행위(민법 750조·758조) |
| 증명책임 | 임차인이 무과실 증명 | 피해자가 임차인 귀책 증명 |
| 실화책임법 적용 | 적용 안 됨 | 경과실이면 배상액 경감 가능 |
| 건물주 관련성 | 원칙적으로 무관 | 공작물책임으로 건물주도 피고 될 수 있음 |
건물주가 별도로 배상책임을 지는 조건 — 공작물책임
건물주가 공작물책임을 지려면 '지하주차장이라는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에 하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돼야 합니다. 스프링클러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고장 난 채 방치됐거나, 화재감지기가 노후해 초기 신호를 놓쳤거나, 전기차 충전구역의 배선·차단기가 기준에 못 미치는 상태였다면 이 요건이 채워집니다. 반대로 법정 기준을 그대로 갖추고 정기점검 기록까지 있다면, 화재가 났다는 사실만으로 건물주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습니다.
2026년 3월 1일부터는 전기차 충전구역에 조기반응형 스프링클러 헤드를 반경 2.1미터 이내로 설치하고, 충전구역 상부에는 아날로그 감지기를 두도록 화재안전기준이 강화됩니다. 지하주차장 규모와 무관하게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을 갖추도록 하는 개정도 함께 진행되고 있어, 기존에는 바닥면적 200제곱미터 미만이라 소방시설 설치 대상에서 빠졌던 소규모 지하주차장도 점차 사각지대에서 벗어나는 추세입니다.
새로 강화된 스프링클러 기준은 2026년 3월 1일 이후 신축 건축물에 적용되고, 기존 건물에는 법적 설치 의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의무가 없다'는 것과 '소송에서 하자가 없다고 인정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미 설치된 스프링클러나 감지기를 고장 난 채로 방치했다면, 신축 기준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과 별개로 통상 갖춰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보아 하자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정기점검을 형식적으로만 받아온 건물일수록 이 지점에서 취약합니다.
특수건물이면 과실이 없어도 배상해야 한다
건물이 화재로 인한 재해보상과 보험가입에 관한 법률상 특수건물에 해당하면, 건물주는 신체손해배상특약부화재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경과실이 있는 경우에도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집니다. 과실이 아예 없었다는 항변으로 빠져나가기가 일반 건물보다 훨씬 어렵다는 뜻입니다.
특수건물 여부는 연면적과 용도로 정해집니다. 학교나 공장처럼 연면적 합계 3천제곱미터 이상인 건물, 16층 이상 공동주택, 국유·공유 부동산 중 연면적 1천제곱미터 이상인 건물 등이 대표적입니다. 다만 일반 업무용·근린생활시설 빌딩이 특수건물에 해당하는지는 용도와 연면적을 함께 따져봐야 하는 문제라, 자신의 건물이 여기에 해당하는지는 전문가 확인이 필요합니다.
| 구분 | 일반 건물 | 특수건물 |
|---|---|---|
| 배상책임 근거 | 민법 758조 공작물책임 | 화재로 인한 재해보상과 보험가입에 관한 법률 |
| 과실 요건 | 설치·보존의 하자 입증 필요 | 경과실이어도 배상책임 발생 |
| 배상 재원 | 건물주 개인 재산 또는 임의 가입 보험 | 신체손해배상특약부화재보험(의무가입) |
| 배상 한도 | 별도 한도 없음(실손 배상) | 보험금액 범위 내로 제한 |
건물주가 지금 점검해야 할 세 가지
법리를 다 알아도 실제 화재가 났을 때 부담이 달라지는 건 결국 평소 관리 기록과 보험 구성입니다. 상담 현장에서 자주 보는 유형이 있습니다. 지하 1층에 기계식 주차장을 둔 6층 규모 근린상가에서, 임차인이 완속충전기로 전기차를 충전하던 중 배터리에서 불이 나 인접 차량 세 대와 주차장 천장 마감재까지 손상된 경우입니다. 건물주는 자신이 가입한 화재보험으로 건물 자체 손해는 보상받았지만, 인접 차량 소유주들은 스프링클러 미설치와 노후 배선을 이유로 건물주에게 별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피해 규모를 숫자로 짚어보면 이렇습니다. 전소된 차량 세 대의 평균 시가를 대당 4천만 원으로 잡으면 차량 손해만 1억 2천만 원, 주차장 마감재와 전기설비 복구비가 3천만 원, 소방 대응과 청소 비용이 500만 원이면 총 피해액은 1억 5,500만 원입니다. 소송에서 스프링클러 노후·미작동이 화재 확산에 40% 기여했다고 인정되면, 건물주가 부담하는 금액은 산술적으로 약 6,200만 원입니다. 반대로 법정 기준을 갖추고 정기점검 이력까지 확보해뒀다면, 같은 피해액이라도 건물주의 실제 부담은 0에 가깝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소송에서 갈리는 지점은 화재 자체가 아니라 평소 소방시설을 기준대로 유지·점검해왔는가입니다.
| 피해 항목 | 금액 |
|---|---|
| 인접 차량 3대(대당 4천만 원) | 1억 2,000만 원 |
| 주차장 마감재·전기설비 복구 | 3,000만 원 |
| 소방 대응·청소 비용 | 500만 원 |
| 총 피해액 | 1억 5,500만 원 |
| 건물주 부담(과실기여도 40% 가정) | 약 6,200만 원 |
건물주가 가입한 화재보험은 대개 '내 건물과 내 시설'의 손해를 보상하는 재산종합보험입니다. 인접 차량이나 다른 임차인에게 발생한 제3자 배상책임은 별도의 임대인배상책임보험 없이는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재보험에 가입돼 있으니 안심이라고 생각했다가, 정작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사비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을 상담 현장에서 자주 봅니다.
빌딩 관리에서 소방시설은 규정을 지키는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범위를 정하는 문제입니다.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지하주차장 화재는 남의 차 문제가 아니라 건물 관리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스프링클러 점검 이력을 남기고, 충전구역 배치를 다시 살피고, 임대인배상책임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 결국 소송에서 건물주의 부담을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