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한 중소형 빌딩 건물주가 대출을 받으며 신탁회사에 소유권을 넘겼습니다. 몇 달 뒤 공실이 생기자 신탁회사에 따로 연락하지 않고 직접 임차인과 계약서를 썼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계약은 임차인에게는 위험한 계약이고 건물주에게는 두 배의 부담이 따라오는 계약입니다.
등기부상 소유자는 이미 신탁회사입니다. 건물주가 혼자 서명한 임대차 계약은 신탁회사와 향후 매수인에게 효력이 없을 수 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건물주 개인에게 돌아갑니다. 이 글은 담보신탁된 건물에서 신탁회사 동의 없이 임대차 계약을 맺었을 때 건물주가 실제로 지는 책임이 무엇인지, 어떤 순서로 확인해야 이 상황을 피할 수 있는지를 다룹니다.
담보신탁된 건물에서 신탁회사 동의 없이 체결한 임대차 계약은 임차인의 대항력을 만들지 못합니다.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그 책임은 신탁회사가 아니라 계약 당사자인 건물주(위탁자) 본인이 집니다.
담보신탁이 뭐길래 건물주에게 임대차 권한이 없어지나
담보신탁은 건물주가 대출을 받을 때 신탁회사에 건물 소유권을 이전등기하고, 신탁회사가 발급한 수익권증서를 은행에 담보로 제공하는 구조입니다. 근저당권 설정 방식과 달리 등기부등본상 소유자 자체가 바뀝니다. 소유자 칸에는 건물주가 아니라 신탁회사 이름이 올라갑니다.
이 순간부터 건물주는 법적으로 위탁자 겸 수익자 지위만 가집니다. 건물의 관리·처분 권한은 원칙적으로 소유자인 수탁자(신탁회사)에게 있습니다. 다만 실무에서는 신탁계약서에 "위탁자는 수탁자의 사전 동의를 받아 위탁자 명의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보증금·임대료를 직접 수취할 수 있다"는 특약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특약 덕분에 건물주는 신탁회사 동의만 받으면 여전히 자기 이름으로 임차인과 계약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동의를 아예 받지 않거나, 받았다고 착각하는 경우에서 시작됩니다.
동의 여부에 따라 임차인의 지위가 완전히 달라진다
대법원 2022. 2. 17. 선고 2019다300095(본소), 2019다300101(반소) 판결은 이 문제의 기준을 보여줍니다. 해당 사건에서는 신탁계약상 수탁자의 사전 승낙 요건이 신탁원부에 기재돼 있었고, 우선수익자도 별도 동의서를 교부한 상태였습니다. 법원은 신탁원부에 기재된 내용에 대항력이 있다고 보아, 임대차보증금 반환의무가 신탁회사가 아니라 위탁자인 건물주에게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대로 수탁자 동의 없이 체결된 임대차는 수탁자나 향후 소유권을 취득한 매수인(공매 낙찰자 포함)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례들이 여러 차례 확인됩니다. 두 판례군을 같이 놓고 보면 실질적인 분기점이 드러납니다. 단순히 "동의를 받았는가"가 아니라, 그 동의 내용이 신탁원부에 기재돼 제3자도 확인할 수 있는 상태인가입니다.
| 구분 | 신탁원부에 동의 기재 있음 | 신탁원부에 동의 기재 없음 |
|---|---|---|
| 임차인 대항력 | 인정 — 제3자에게도 주장 가능 | 불인정 |
| 보증금 반환의무자 | 위탁자(건물주) | 위탁자(건물주) — 단 임차인이 신탁회사·낙찰자에는 대항 불가 |
| 공매·매각 시 임차인 지위 | 임대차 승계 가능성 있음 | 낙찰자에게 대항 못하고 퇴거 위험 |
실무에서 자주 보이는 오해가 여기서 생깁니다. 임차인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 대항요건(건물 인도와 사업자등록)을 다 갖췄더라도, 애초에 계약 상대방이 처분 권한 없는 사람이었다면 그 대항요건은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중개 과정에서 "신탁회사 동의서 한 장 받아뒀으니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계약하는 임차인이 적지 않은데, 그 동의서가 신탁원부에 반영되지 않았다면 공매 낙찰자에게는 대항할 수 없습니다.
동의 없이 계약한 건물주가 실제로 지는 책임 3가지
동의 없는 임대차의 후폭풍은 건물주에게 세 갈래로 돌아옵니다. 순서대로 보면 왜 이 문제가 단순한 서류 미비로 끝나지 않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임차인에 대한 민사책임
계약 당사자는 신탁회사가 아니라 건물주 개인입니다.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건물주 개인 재산으로 반환해야 합니다. 신탁법 제22조는 신탁재산에 대한 강제집행, 담보권 실행 경매, 보전처분, 체납처분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신탁 전 원인이나 신탁사무 처리상 발생한 권리가 아닌 이상 임차인은 건물 자체에 손을 댈 수 없습니다. 무단 임대차의 보증금 반환채권은 이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결국 건물주 개인의 자력에 의존하게 됩니다.
둘째, 신탁계약 위반에 따른 조치
신탁회사가 무단 임대 사실을 확인하면 신탁계약 위반으로 처리합니다. 대출을 실행한 우선수익자에게도 통보되는데, 대출약정서에는 대체로 신탁계약 위반이 기한이익상실 사유로 명시돼 있습니다. 즉 대출잔액을 즉시 상환하라는 청구를 받을 수 있고, 상환하지 못하면 공매 절차가 예정보다 앞당겨 개시될 수 있습니다.
셋째, 형사책임 가능성
사안에 따라 문제될 여지가 있으나, 신탁계약의 구체적 내용과 위탁자의 인식 여부에 따라 결론이 달라져 일률적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이 부분은 전문가 확인이 필요합니다.
실제 상담에서 자주 보는 사례를 하나 들면 이렇습니다. 신사동 소재 시가 30억 원대 빌딩을 담보신탁으로 대출 15억 원을 받은 건물주가, 공실이 나자 신탁회사 동의 없이 보증금 2억 원, 월세 800만 원 조건으로 임차인과 계약했습니다. 몇 달 뒤 신탁회사가 무단 임대 사실을 확인해 우선수익자에게 통보했고, 우선수익자는 기한이익상실을 이유로 대출잔액 15억 원의 즉시 상환을 청구했습니다. 건물주는 대출잔액 15억 원과 임차인 보증금 반환 2억 원, 합계 17억 원 상당의 자금을 동시에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 책임 유형 | 내용 | 근거 |
|---|---|---|
| 민사책임 | 임차인에 대한 보증금 반환·손해배상, 건물주 개인재산으로 부담 | 계약 당사자 책임 원칙, 신탁법 제22조 |
| 신탁계약상 책임 | 신탁계약 해지 사유, 우선수익자의 기한이익상실 청구 가능 | 신탁계약서·대출약정서 |
| 형사책임 가능성 | 사안별로 문제될 수 있음 | 전문가 확인 필요 |
신탁회사 동의를 구두로만 받거나 담당 직원과 통화한 내용만 믿고 계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탁원부에 기재되지 않은 동의는 제3자에게 효력이 없습니다. 반드시 서면 동의서와 신탁원부 기재 여부를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계약 전에 무엇을, 어떤 순서로 확인해야 하나
순서를 바꾸면 나중에 다시 확인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신탁원부 열람이 가장 먼저입니다. 등기부등본만으로는 신탁계약의 구체적인 특약 내용까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관할 등기소에서 신탁원부를 별도로 발급받아 위탁자의 임대차 체결 조건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다음 신탁회사의 서면 동의서를 받고, 대출을 실행한 우선수익자의 동의가 별도로 필요한지도 신탁계약서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담보신탁계약에서는 임대차와 관련해 수탁자 동의뿐 아니라 우선수익자 동의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실무상 적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임대차 계약서 자체에 신탁회사 동의 사실과 그 근거(동의서 발급 일자, 신탁원부 기재 여부)를 특약으로 명시해두면, 이후 분쟁이 생겼을 때 입증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담보신탁된 건물에서 임대차 계약의 진짜 소유자는 등기부에 적힌 이름입니다.
담보신탁 구조의 빌딩을 관리하는 실무에서는 임대차 계약 전 신탁원부 확인을 예외 없는 표준 절차로 둡니다. 동의서 한 장을 받았는지가 아니라, 그 동의가 신탁원부에 남아 제3자에게도 통하는지가 실제로 건물주의 책임 범위를 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