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이 한 자리에서 11년, 12년째 영업하고 있으면 건물주 입장에서는 계약갱신요구권 10년이 이미 끝났다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상담 중에 "이제 갱신 거절도 자유롭고 권리금도 내 알 바 아니지 않냐"고 묻는 임대인이 적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닙니다. 계약갱신요구권이 소멸했다는 사실과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서 처음부터 별개의 조문으로 설계돼 있고, 대법원도 이 둘을 분리해서 판단합니다. 10년을 넘긴 임차인을 상대로 임대인이 어디까지 자유롭고 어디서부터는 여전히 책임을 지는지, 조문과 판례 기준으로 짚습니다.
계약갱신요구권(제10조)의 10년 한도가 끝나도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의무(제10조의4)는 별도로 남습니다. 임대인이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경우는 3기 차임 연체 같은 법정 면제사유가 있거나, 목적물이 대규모점포·국공유재산일 때뿐입니다.
계약갱신요구권과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는 애초에 다른 제도입니다
두 제도는 만들어진 목적부터 다릅니다. 계약갱신요구권(제10조)은 임차인이 임대인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로부터 최장 10년까지 영업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든 장치입니다. 2018년 10월 16일 개정 이전에는 5년이었고, 그 이후 새로 체결되거나 갱신되는 계약부터 10년으로 늘었습니다. 반면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제10조의4)는 임대차가 끝나는 시점에 임차인이 그동안 쌓은 단골, 인테리어, 영업 노하우의 가치, 즉 권리금을 신규임차인에게서 회수할 수 있도록 임대인의 방해를 막는 조문입니다. 적용 시점 자체가 다릅니다. 제10조는 계약 갱신을 요구하는 시점에, 제10조의4는 계약이 끝나는 시점(만료 6개월 전부터 종료 시까지)에 작동합니다.
대법원은 2019년 5월 16일 선고한 2017다225312, 225329 판결에서 이 구분을 명확히 했습니다. 최초 임대차 기간을 포함해 전체 기간이 10년을 넘어 임차인이 더 이상 갱신을 요구할 수 없게 된 경우에도, 임대인은 제10조의4에 따른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의무를 그대로 부담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제10조의4 단서는 임대인의 의무를 면제하는 사유로 제10조 1항 각 호의 사유만 규정할 뿐, 갱신요구기간 경과는 면제사유로 넣지 않았습니다. 둘째, 제10조의4는 애초에 계약이 끝나는 순간 임차인을 보호하려는 조문이라, 갱신요구권이 소멸해 계약이 종료되는 상황에서야말로 더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임대인이 하면 안 되는 방해행위 네 가지
제10조의4가 금지하는 행위는 막연한 "방해"가 아니라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돼 있습니다.
네 가지 중 실무에서 가장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은 세 번째입니다. 신규임차인에게만 기존보다 현저히 높은 차임이나 보증금을 요구해 사실상 계약을 무산시키는 방식은 겉보기에는 "정당한 임대 조건 협상"처럼 보이지만, 법원은 이를 방해행위로 판단합니다.
표로 정리하면 이렇게 갈립니다
두 제도의 차이를 항목별로 나열하면 임대인이 어디까지 자유롭고 어디서부터 책임을 지는지 한눈에 보입니다.
| 구분 | 계약갱신요구권 |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
|---|---|---|
| 근거 조문 | 제10조 | 제10조의4 |
| 작동 시점 | 만료 전 6개월~1개월 | 만료 전 6개월~종료 시 |
| 소멸·종료 기준 | 최초 계약 포함 전체기간 10년 | 임대차가 실제로 끝나는 날 |
| 임대인 의무 | 정당한 사유 없이 갱신 거절 불가, 차임 5% 상한 | 신규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방해 금지 |
| 면제 사유 | 제10조1항 각 호(3기 연체 등) | 위 사유 + 대규모점포·국공유재산 |
| 위반 시 효과 | 갱신 거절이 무효로 다투어짐 | 권리금 상당액 손해배상(3년 시효) |
문제는 이 구분을 모르는 임대인이 실제로 어떤 순서로 리스크에 빠지는가입니다.
실제 상담에서 자주 보는 흐름은 이렇습니다. 갱신요구권이 소멸했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권리금 보호 의무도 함께 끝났다고 판단해 신규임차인과의 계약 체결을 미루거나 거부합니다. 이 시점에서 임대인은 "10년 지났으니 나가라"는 말과 "권리금은 알아서 하라"는 말을 같은 의미로 쓰지만, 법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진술입니다. 신규임차인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더라도 임대인이 계약 체결 의사가 없다는 뜻을 확정적으로 밝히면 그 자체로 방해행위가 됩니다. 대법원 2019년 7월 4일 선고 2018다284226 판결이 이 부분을 확인했습니다.
임대인이 실제로 자유로워지는 세 가지 경우
10년 초과는 면제 사유가 아니지만, 임대인이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의무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경로는 따로 있습니다.
첫째, 제10조 1항 각 호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입니다. 3기분 이상 차임을 연체했거나, 임대인 동의 없이 전대했거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목적물을 파손했거나, 건물이 멸실돼 임대차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철거·재건축 계획을 계약 체결 당시 임차인에게 구체적으로 고지하고 그 계획대로 진행하는 경우가 여기 해당합니다. 둘째, 임대차 목적물이 유통산업발전법상 대규모점포나 준대규모점포의 일부인 경우입니다. 다만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상 전통시장은 이 예외에서 다시 제외되므로 여전히 보호 대상입니다. 셋째, 목적물이 국유재산 또는 공유재산인 경우입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건물이라면 제10조의4가 아예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 중 실무에서 가장 자주 다투어지는 것은 첫째, 철거·재건축 사유입니다. 재건축 계획을 구체적으로 고지했는지, 실제로 그 계획대로 진행했는지가 쟁점이 되고, "나중에 재건축할 수도 있다" 정도의 막연한 언급만으로는 면제사유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환산보증금이 서울 9억 원(2026년 기준)을 넘는 임대차라 해도 계약갱신요구권과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환산보증금 기준으로 달라지는 것은 차임 인상률 5% 상한이나 대항력·확정일자에 따른 우선변제권 같은 일부 조항이지, 권리금 보호는 여기서 예외로 빠지지 않습니다.
실무에서는 이렇게 계산됩니다
권리금 회수기회를 방해당한 임차인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금액은 임대인 마음대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산정 방식은 세 단계입니다.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사람과 임차인 사이에 약정한 권리금 액수를 먼저 확인하고, 임대차가 종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감정평가한 권리금 시가를 별도로 확인한 다음, 두 금액 중 더 낮은 쪽을 손해배상액으로 확정합니다.
마포에서 20㎡ 남짓한 커피전문점을 11년 6개월째 운영해 온 임차인 상담 사례를 보면 감이 잡힙니다. 보증금 5,000만 원, 월세 250만 원으로 계약갱신요구권 10년은 이미 지난 상태였습니다. 임차인은 신규임차인을 구해 권리금 1억 2,000만 원에 영업권을 넘기기로 약정했는데, 임대인이 "10년 지난 자리라 내가 알아서 다음 세입자를 들이겠다"며 계약 체결을 거부했습니다. 이후 감정평가한 종료 당시 권리금 시가는 9,000만 원으로 나왔습니다. 이 경우 손해배상액은 약정 권리금 1억 2,000만 원이 아니라 둘 중 낮은 금액인 9,000만 원으로 확정됩니다.
부동산 정보 글이나 블로그를 검색하면 "계약갱신요구권 10년이 지난 임차인은 권리금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설명이 여전히 돌아다닙니다. 조문을 표면적으로만 읽으면 그렇게 오해하기 쉽지만, 대법원 판례로 확정된 결론은 정반대입니다. 이 오해를 그대로 믿고 신규임차인 주선을 거부했다가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실무에서 반복됩니다.
임대차가 끝난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임차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합니다. 다만 임대인 입장에서 이 3년을 "버티면 끝나는 기간"으로만 계산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소송이 시작되면 방해행위가 있었는지,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를 다투게 되고, 이때 방해행위 시점의 정황이 그대로 증거가 됩니다.
임대차는 계약서 만료일이 아니라 법이 정한 여러 시계로 동시에 흘러갑니다.
안택스 에셋이 관리하는 건물에서도 10년 차 임차인의 권리금 문제는 매년 몇 건씩 반복되는 상담 주제입니다. 계약서 한 장보다 관련 조문 여러 개를 같이 보는 습관이, 결국 소송 비용보다 싸게 먹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