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구한 신규 임차인 앞에서 건물주가 갑자기 터무니없는 보증금과 월세를 부르는 바람에 권리금 계약이 통째로 무산됐다는 상담이 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방식도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금지하는 권리금 회수 방해행위에 해당합니다. 임대인이 노골적으로 "계약을 안 하겠다"고 말하지 않아도, 조건만 비상식적으로 높여 사실상 계약을 무산시켰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2026년 8월 대법원이 부산의 한 약국 사례를 통해 이 기준을 다시 확인하면서, 하급심에서 관행처럼 쓰이던 방어 논리 하나가 뒤집혔습니다. 어느 정도의 인상이 '방해'로 인정되는지, 건물주와 임차인이 각각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실제 판결 수치로 짚어보겠습니다.
임대인이 신규 임차인에게 주변 시세와 적정 차임에 비추어 현저히 고액인 보증금·차임을 요구해 계약이 무산됐다면, 명시적으로 거절하지 않았어도 권리금 회수 방해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권리금 회수 방해, 법이 정한 4가지 유형부터 구분해야 합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4는 임대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임대차가 종료될 때까지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4가지로 못 박아 두고 있습니다. 이 조항의 보호 대상은 권리금 그 자체가 아니라, 임차인이 새 임차인을 통해 권리금을 회수할 기회입니다. 그래서 임대인이 반드시 계약을 대놓고 거절해야만 방해가 성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무에서 가장 자주 문제 되는 유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당신이 데려온 사람과는 계약하지 않겠다"는 명시적 거절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다룰 조건, 즉 신규임차인에게 시세보다 현저히 높은 차임·보증금을 요구해 계약을 사실상 좌절시키는 방식입니다. 후자는 겉으로는 "협상 중"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임차인 입장에서 방해 여부를 판단하기가 훨씬 까다롭습니다.
| 구분 | 금지행위 | 실무에서 흔한 형태 |
|---|---|---|
| 제1호 | 권리금을 직접 요구하거나 수수 | 임대인이 "권리금 일부를 나에게 달라"고 요구 |
| 제2호 | 신규임차인의 권리금 지급을 방해 | 신규임차인에게 "권리금은 안 줘도 된다"며 이간 |
| 제3호 | 현저히 고액의 차임·보증금 요구 | 시세보다 과도한 조건을 제시해 계약을 사실상 무산 |
| 제4호 | 정당한 사유 없는 계약체결 거절 | "세입자를 바꾸지 않겠다"며 확정적으로 거절 |
임대료를 3배 넘게 올려 부른 것도 방해로 인정된 2026년 대법원 사례
2026년 8월 대법원이 다룬 사건은 이 유형을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20년 넘게 부산에서 약국을 운영해 온 임차인이 보증금 1억원, 월세 600만원 조건으로 임대차를 이어오다가, 건물주가 월세 인상을 통보하자 신규 임차인을 직접 주선했습니다. 그런데 건물주는 이 예비 임차인에게 보증금 5억원, 월세 2,000만원을 요구했고, 결국 계약은 무산됐습니다.
| 구분 | 기존 임차조건 | 신규 요구조건 | 배율 |
|---|---|---|---|
| 보증금 | 1억원 | 5억원 | 5배 |
| 월차임 | 600만원 | 2,000만원 | 약 3.3배 |
| 환산보증금* | 7억원 | 25억원 | 약 3.57배 |
환산보증금은 상가임대차법 특유의 계산법으로, 보증금에 월차임의 100배를 더해 구합니다. 기존 조건은 1억원+(600만원×100)=7억원, 신규 요구조건은 5억원+(2,000만원×100)=25억원으로, 두 조건의 차이가 숫자로 명확히 드러납니다.
1심과 2심은 임차인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뒤집고 사건을 부산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정도의 차임·보증금 차이는 현저히 고액이라고 볼 여지가 많다는 이유였습니다. 실제 상담에서도 이와 비슷한 패턴이 자주 등장합니다. 10년 넘게 한 자리에서 카페나 음식점을 운영해 온 임차인이 보증금 8,000만원·월세 300만원 수준의 조건에서 신규 임차인을 주선했는데, 건물주가 신규 임차인에게는 보증금 2억원·월세 800만원을 요구해 계약이 깨지는 식입니다. 인상 배율만 보면 이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입니다.
'현저히 고액'인지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까요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 기준은 단순한 배율 계산이 아닙니다. 기존 임차인과의 조건 차이, 상가건물의 시세 및 적정 차임, 거래관행과 경제상황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독립된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조건을 여러 각도에서 검증하는 절차에 가깝습니다.
실무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를 보면, 보증금 5배·월세 3배 이상을 요구한 경우와 적정 차임 대비 약 1.7배 수준을 요구한 경우, 주변 시세보다 20~50% 폭등한 조건을 요구한 경우 모두 방해행위로 인정된 바 있습니다. 통상적인 재계약 인상률로 볼 수 있는 5~15% 수준의 조정은 안전한 편이고, 30%를 넘어서면 다툼의 소지가 커지며, 기존 조건의 2배를 넘어서는 순간부터는 위반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뚜렷하게 높아진다는 것이 실무에서 나타나는 경향입니다. 다만 이 수치는 개별 사건의 결과이지 법에 못 박힌 기준선은 아니라는 점을 함께 알아둬야 합니다.
여기서 실무자들이 자주 놓치는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그동안 하급심에서는 임차인이 감정평가를 통해 적정 차임을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청구를 기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2026년 대법원은 이 관행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감정 절차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며, 적정 차임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손해배상 청구를 배척해서는 안 되고, 필요하다면 감정 등을 통해 직접 확인한 뒤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습니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감정 신청을 미리 포기할 이유가 없고, 건물주 입장에서는 "임차인이 입증을 못 했으니 괜찮다"는 방어 논리를 더는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손해배상 범위와 청구기한, 그리고 예외 사유
방해행위가 인정되더라도 배상액은 무제한이 아닙니다. 신규임차인이 지급하기로 한 권리금과, 임대차 종료 당시의 권리금 중 낮은 금액을 넘지 못합니다. 두 금액을 각각 산정한 뒤 더 적은 쪽을 상한으로 잡는 구조입니다.
손해배상 청구권은 임대차가 종료한 날부터 3년 이내에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소멸합니다. 계약이 무산된 시점이 아니라 임대차 종료일이 기준이므로, 날짜를 정확히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모든 상가 임대차에 이 보호가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임차인에게 3기 차임액에 이르는 연체나 임대인 동의 없는 무단전대 같은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 대규모점포·준대규모점포의 일부인 상가건물인 경우(전통시장은 제외), 국유재산이나 공유재산인 경우에는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규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 예외 사유 | 내용 |
|---|---|
| 임차인 귀책 | 3기 차임액 연체, 무단 전대 등 |
| 대규모점포 | 대규모·준대규모점포 일부(전통시장 제외) |
| 국공유재산 | 국유재산·공유재산인 상가건물 |
권리금 분쟁은 임대료를 깎는 협상이 아니라, 계약을 이어줄 것인가를 가르는 판단입니다.
안택스 에셋이 관리하는 빌딩에서도 임차인이 바뀌는 시점마다 이 조항이 쟁점으로 떠오릅니다. 신규 임차인에게 제시할 조건을 시세 자료로 미리 뒷받침해두는 편이, 나중에 소송 비용을 치르는 것보다 훨씬 부담이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