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상속세 신고 기한이 다가오면, 형제 중 한 명이 먼저 통장에서 세금을 내는 일이 흔하다. 부동산은 아직 처분 전이고 현금은 손에 없는 상황에서, 여윳돈이 있는 형이나 언니가 세무서에 세금부터 넣어두고 나중에 정산하자고 하는 식이다. 이때 정작 세금을 내지 않은 형제들은 궁금해진다. 내 몫의 세금을 남이 대신 냈으니, 그만큼 증여받은 걸로 보고 별도로 증여세를 내야 하는 건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면 대부분의 경우 아니다. 다만 이 '대부분'이라는 단서 안에 실무에서 자주 걸려 넘어지는 함정 몇 가지가 있다.
상속인은 상속세및증여세법 제3조의2에 따라 각자 받은 재산 한도 안에서 상속세를 연대하여 낼 법적 의무가 있다. 이 한도 안에서 형제 중 한 명이 세금을 몰아서 냈다면 증여세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문제는 그 한도를 넘겨 냈거나, 나중에 갚지 않기로 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형제가 상속세를 대신 냈다고 곧바로 증여세가 붙지는 않는다
상속인이 여러 명이면 상속세 산출세액을 각자가 받았거나 받을 재산의 비율로 나눠 각자 부담한다. 그런데 상속세및증여세법 제3조의2 제3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공동상속인과 수유자는 각자가 받았거나 받을 재산을 한도로, 서로의 상속세까지 연대하여 납부할 의무를 진다고 못박는다. 형이 동생 몫의 상속세까지 함께 낸 것은 임의로 재산을 얹어준 게 아니라, 법률이 상속 개시와 동시에 자동으로 지운 의무를 이행한 것에 가깝다.
국세청도 이 점을 명확히 한다. 공동상속인 중 한 명이 전체 상속세를 납부했다고 해서 세금을 내지 않은 나머지 상속인에게 그 금액만큼 증여세가 부과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증여세는 대가 없이 재산을 넘겨받았을 때 매기는 세금인데, 연대납부의무 이행은 법이 정한 채무를 갚은 것이라 애초에 증여의 틀 밖에 있다는 논리다. 반대로 연대납세의무자에 해당하지 않는 제3자가 수증자를 대신해 낸 증여세는 그대로 증여가액에 포함된다. 같은 '대납'이라도 법률상 의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론이 갈린다.
연대납부의무 '한도'는 정확히 얼마까지인가
한도는 형제가 상속으로 받은 자산에서 채무와 자기 몫 상속세를 뺀 금액이다. 상속세및증여세법 시행령 제3조는 이 한도를, 상속으로 얻은 자산총액(상속재산에 가산된 사전증여재산 포함)에서 부채총액과 그 상속으로 부과되거나 납부할 상속세(가산된 사전증여재산에 대한 증여세 포함)를 뺀 가액으로 규정한다. 말이 복잡하지만 계산은 간단하다.
숫자로 확인해 보면 감이 잡힌다. 아버지가 20억 원의 상속재산을 남기고, 상속인은 장남과 차남 두 명뿐이며 협의분할로 각자 10억 원씩 받았다고 하자. 배우자가 없어 일괄공제 5억 원만 적용하면 과세표준은 15억 원이다. 10억 원 초과 30억 원 이하 구간 세율 40%에 누진공제 1억 6,000만 원을 적용하면 산출세액은 4억 4,000만 원이고, 법정기한 내 신고에 따른 신고세액공제 3%를 빼면 실제 결정세액은 4억 2,680만 원이다. 두 형제가 재산을 반씩 받았으니 부담 비율도 50대 50, 각자 부담할 세액은 2억 1,340만 원씩이다.
| 구분 | 장남 | 차남 |
|---|---|---|
| 상속으로 받은 재산가액 | 10억원 | 10억원 |
| 부채 | 0원 | 0원 |
| 본인 부담 상속세 | 2억 1,340만원 | 2억 1,340만원 |
| 연대납부의무 한도 | 7억 8,660만원 | 7억 8,660만원 |
장남이 결정세액 4억 2,680만 원을 혼자 자기 돈으로 냈다고 가정하면, 그중 차남 몫은 2억 1,340만 원이다. 이 금액이 장남의 연대납부의무 한도인 7억 8,660만 원보다 한참 작으므로 증여세는 붙지 않는다. 형제가 받은 재산 규모가 비슷한 상황에서는 한도 자체가 넉넉해서, 세금을 몰아 내는 정도로는 좀처럼 초과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도를 넘기거나, 나중에 안 갚기로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문제는 두 지점에서 생긴다. 하나는 애초에 한도 자체가 좁은 경우, 다른 하나는 갚기로 한 돈을 사실상 면제해주는 경우다.
실제 상담에서 자주 보는 사례가 있다. 부모가 생전에 자녀 한 명에게 상가나 예금을 미리 증여했고, 이 재산이 나중에 상속재산에 합산되는 경우다. 이 자녀는 상속개시 당시 새로 받은 재산은 거의 없고 사전증여재산만 있는 셈인데, 이때 연대납부의무 한도는 상속재산 전체가 아니라 사전증여재산가액에서 그때 이미 낸 증여세를 뺀 좁은 범위로 잡힌다. 다른 형제들이 이 형제의 몫까지 넉넉하게 계산해서 세금을 몰아 내주면, 좁아진 한도를 넘기는 순간 초과분에 증여세가 붙는다.
두 번째 함정은 한도 계산과 무관하게 발생한다. 형이 동생 몫 상속세를 한도 안에서 대신 냈더라도, 나중에 어차피 가족이니 안 갚아도 된다며 구상권을 접어버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속세및증여세법 제36조는 채권자로부터 채무를 면제받은 경우 그 이익만큼을 증여재산가액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대납 자체는 세법이 허용한 연대납부의무 이행이었지만, 그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정리하는 순간 별도의 채무면제 증여가 성립하는 구조다.
| 구분 | 한도 내 대납 | 한도를 넘긴 대납 |
|---|---|---|
| 법적 성격 | 연대납부의무 이행 | 의무 범위를 벗어난 대신 납부 |
| 증여세 | 과세되지 않음 | 초과분에 대해 과세 |
| 자주 걸리는 경우 | 형제 재산 규모가 비슷할 때 | 사전증여재산만 있어 한도가 좁을 때, 구상권을 사실상 포기했을 때 |
대납 당시에는 증여세 문제가 없었더라도, 몇 년이 지나도록 상환 내역이 전혀 없으면 국세청은 애초부터 갚을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고 채무면제이익 증여로 재구성할 수 있다. 정산 계획을 문서로 남겨 두는 편이 안전하다.
실무에서는 이렇게 정리해야 뒤탈이 없다
상속세를 몰아서 낼 계획이라면, 실행하기 전에 세 가지를 확인해 두는 편이 좋다.
첫째, 한도부터 계산해 둔다. 각자 받은 재산가액과 본인 부담 상속세를 미리 뽑아 보면 한도를 넘길 위험이 있는지 바로 확인된다. 둘째, 구상권을 문서로 남긴다. 누가 얼마를 언제까지 갚기로 했는지 정산 합의서 형태로 기록해 두면, 나중에 소명할 때 근거가 된다. 셋째, 실제로 상환을 이행한다. 부동산을 처분한 뒤 정산하기로 했다면 그 시점과 방식을 구체적으로 정해 두고, 기약 없이 미뤄두지 않는다.
형제 재산 규모가 비슷하고 상속재산 대부분이 상속개시 당시 새로 받은 자산이라면 한도를 넘길 일은 거의 없다. 반대로 특정 형제가 사전증여재산 위주로만 상속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 형제 몫의 세금을 대신 낼 때는 한도 계산부터 먼저 해보는 게 순서다.
상속세를 대신 냈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금액이 한도 안에 있었는지와 나중에 정말 갚았는지가 증여세 여부를 가른다.
형제가 상속세를 몰아서 내는 일 자체는 법이 예정해 둔 정상적인 절차다. 다만 한도 계산과 구상권 정리를 건너뛰면, 몇 년 뒤 세무조사에서 채무면제이익 증여로 재구성될 수 있다. 대납을 계획하고 있다면 금액을 정하기 전에 한도부터 뽑아보는 편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