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전에 사업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개인사업자가 가장 자주 놓치는 것은 매출세액이 아니라 남은 재고입니다. 폐업 신고만 마치면 끝이라고 생각하다가, 확정신고서에 찍힌 예상 밖의 세액을 보고 당황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 세액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 판 것이 아니라 창고에 그대로 쌓여 있는 재고와 집기에 붙는 간주공급 부가가치세입니다. 폐업일 현재 남아 있는 재화 중 매입세액을 공제받은 것은 시가나 감가상각 후 잔존가액을 기준으로 10%가 과세되고, 이 금액은 폐업일이 속한 달의 다음 달 25일까지 확정신고서에 그대로 반영해야 합니다.
폐업 시 남아 있는 재고·비품 중 매입세액을 공제받은 재화는 시가(재고자산) 또는 감가상각 반영 잔존가액(비품·설비) 기준으로 10% 부가가치세가 부과되며, 매입세액을 공제받지 못한 재화는 애초에 과세 대상에서 빠집니다.
왜 남은 재고에 세금이 붙을까 — 간주공급의 원리
남은 재고에 세금이 붙는 이유는 그 재화를 살 때 이미 매입세액을 공제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업자가 원재료나 상품, 비품을 매입하면서 낸 부가가치세는 이후 그 재화가 과세사업에 쓰인다는 전제 아래 공제받은 돈입니다. 그런데 폐업으로 사업자 지위가 사라지면 남은 재화는 더는 과세사업용이 아니라 개인이 소비하거나 처분할 자산이 됩니다. 이 상태를 그냥 두면 애초에 공제받은 매입세액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어지므로, 부가가치세법 제10조 제6항은 폐업 시 남아 있는 재화를 자기가 자기에게 공급한 것으로 간주해 다시 세금을 매기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대상은 상품·제품·원재료 같은 재고자산뿐 아니라 기계장치, 차량운반구, 비품, 건물·구축물 같은 감가상각자산까지 포함합니다. 반대로 매입 당시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재화는 애초에 추징할 매입세액이 없으므로 대상에서 빠지는데, 이 부분은 뒤에서 별도로 다룹니다.
재고자산과 감가상각자산, 계산법이 다르다
같은 잔존재화라도 재고자산과 감가상각자산은 과세표준을 구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상품·제품·원재료 같은 재고자산은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제62조에 따른 시가가 과세표준입니다. 시가는 사업자가 특수관계 없는 자와 계속 거래해 온 가격, 또는 그런 가격이 없으면 제3자 간에 일반적으로 거래되는 통상 거래가격을 우선 적용합니다.
기계장치·비품·차량운반구 같은 감가상각자산은 다릅니다. 취득가액 전체가 아니라 경과된 과세기간만큼 상각률을 반영한 잔존가액에 세금을 매깁니다. 건물·구축물은 과세기간(6개월)마다 5%씩, 그 외 감가상각자산은 과세기간마다 25%씩 차감하며, 경과된 과세기간 수는 건물·구축물은 20개, 그 외 자산은 4개를 넘으면 각각 20개, 4개로 계산합니다. 쉽게 말해 비품이나 차량 같은 자산은 취득 후 2년(과세기간 4개)이 지나면 잔존가액이 0원이 되어 간주공급 세금이 아예 붙지 않습니다.
| 구분 | 대상 재화 | 과세표준 산정 방식 |
|---|---|---|
| 재고자산 | 상품, 제품, 원재료, 저장품 등 | 시가 (통상 거래가격 또는 유사거래가격) |
| 감가상각자산 — 기계·비품 등 | 기계장치, 차량운반구, 비품, 시설장치 등 | 취득가액 × (1 − 25% × 경과된 과세기간 수), 4개 초과 시 4개로 계산 |
| 감가상각자산 — 건물·구축물 | 건물, 구축물 | 취득가액 × (1 − 5% × 경과된 과세기간 수), 20개 초과 시 20개로 계산 |
실제 계산 — 재고 4,200만원이 남았다면 부가세는 얼마
실제 상담에서 자주 보는 사례로 계산해 보면 감이 빠르게 잡힙니다. 의류 소매업을 하던 개인사업자가 2026년 11월 20일 폐업하면서 재고 매입원가 4,200만원, 진열대·POS기기 등 비품 취득가액 800만원이 남았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두 재화 모두 매입 당시 세액공제를 받았습니다.
재고자산은 시가를 매입원가와 동일하게 본다면 4,200만원 × 10% = 420만원입니다. 비품은 2025년 1기(2025년 3월)에 취득해 폐업 시점인 2026년 2기까지 과세기간이 3개 경과했으므로, 잔존가액은 800만원 × (1 − 25% × 3) = 200만원이 되고, 여기에 10%를 곱한 20만원이 부가세입니다. 둘을 더하면 이 사업자가 확정신고서에 추가로 반영해야 할 간주공급 부가가치세는 440만원입니다.
| 구분 | 금액·조건 | 부가가치세 |
|---|---|---|
| 재고자산(의류) | 매입원가 4,200만원, 시가 동일 가정 | 420만원 |
| 비품(진열대·POS 등) | 취득가액 800만원, 경과 과세기간 3개 → 잔존가액 200만원 | 20만원 |
| 합계 | — | 440만원 |
간주공급 세액을 누락하면 과소신고가산세(일반 10%, 부정 40%)와 납부지연가산세(1일 0.022%)가 함께 붙습니다. 폐업 확정신고 기한은 폐업일이 속한 달의 다음 달 25일까지이며, 위 사례라면 2026년 12월 25일까지 신고·납부해야 합니다.
매입세액 공제 못 받은 재고는 예외 — 폐업 전 처분이 유리한 이유
모든 재고에 세금이 붙는 건 아닙니다. 매입 당시 세액공제를 받지 못한 재화는 부가가치세법 제10조 제6항 단서에 따라 간주공급 대상에서 빠집니다. 간이과세자로 사업을 시작해 매입세액을 온전히 공제받지 못한 재고, 면세 겸용으로 사용해 애초에 공제받지 않은 재화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실무에서 자주 보는 함정은 반대 방향입니다. 일반과세로 전환한 사업자가 전환 전에 매입한 재고까지 전부 공제받은 재화로 착각해 과세표준에 넣거나, 반대로 공제받은 재고까지 통째로 제외해 세금을 덜 신고하는 경우가 둘 다 나옵니다. 매입 시점의 사업자 유형과 세금계산서 수취 여부를 재화별로 확인해야 정확합니다.
판단 기준은 하나 더 있습니다. 폐업 전에 재고를 정상적으로 할인 판매해 처분하면 그것은 간주공급이 아니라 일반 공급이므로, 과세표준은 시가가 아니라 실제 판매가액입니다. 정리 판매가가 시가보다 낮게 형성된다면, 남겨서 시가로 과세받는 것보다 세부담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선 사례의 재고를 정리 세일로 3,000만원에 전부 판매했다면 세금은 300만원으로, 그대로 남겨 간주공급으로 신고했을 때의 420만원보다 적습니다. 다만 이 방식은 폐업일 이전에 세금계산서나 현금영수증을 발급하며 정상 매출로 처리해야 인정되고, 폐업일 이후에 처분하면 다시 간주공급 논리로 돌아갑니다.
재고를 남긴 채 폐업하면 시가로 과세되고, 정리해서 팔면 판매가로 과세됩니다. 그 차이가 절세의 여지입니다.
폐업일을 확정하기 전에 남은 재고부터 실사하고 처분 계획을 세우는 것이 순서입니다. 재고를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느냐에 따라 확정신고서에 찍히는 세액이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