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생전에 부동산이나 예금을 유언대용신탁에 맡기고, 특정 자녀 한 명을 사후수익자로 지정해두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신탁만 활용하면 다른 상속인의 유류분 반환청구를 완전히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퍼져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틀린 이야기다. 신탁재산 자체는 상속재산에 포함되지 않지만, 최근 하급심은 이를 사인증여에 준하는 특별수익으로 보아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 포함시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다만 신탁 구조 특성상 반환의무를 지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또 다른 쟁점이 되면서, 실무에서는 소송 상대를 잘못 짚어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나온다.
신탁재산은 상속재산은 아니지만 특별수익으로 유류분 기초재산에 포함되는 것이 최근 판례의 흐름입니다. 반환의무는 신탁을 관리한 수탁자가 아니라 실제 이익을 받은 수익자가 집니다.
유언대용신탁, 재산은 언제 상속재산에서 빠져나가나
유언대용신탁에는 네 명의 등장인물이 있다. 재산을 맡기는 위탁자, 그 재산을 관리·운용하는 수탁자, 위탁자가 살아있는 동안 이익을 받는 생전수익자(대개 위탁자 본인), 위탁자 사망 후 이익을 받는 사후수익자 또는 잔여재산 귀속권리자다. 위탁자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신탁이 사실상 자익신탁이어서 일반 재산과 실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가, 위탁자가 사망하는 순간 잔여재산이 상속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후수익자에게 바로 넘어간다. 이 지점이 "신탁으로 넘기면 유류분을 피할 수 있다"는 오해의 출발점이다.
중요한 건 계약서에 귀속권리자를 어떻게 써두었느냐다. 대법원 2024. 4. 16. 선고 2022다307294 판결은 유언대용신탁 계약에서 법정상속인 중 한 명을 수탁자 겸 사후수익자로 지정한 부분은 무효라고 보면서도, 같은 사람을 잔여재산 귀속권리자로 지정한 부분까지 전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아울러 계약서에 귀속권리자를 별도로 정하지 않았다면 잔여재산은 생전수익자, 즉 위탁자 본인에게 귀속되어 결국 상속재산으로 편입된다는 법리도 함께 정리했다. 신탁계약서 조항 하나가 재산이 상속재산으로 남는지, 신탁재산으로 빠져나가는지를 가르는 셈이다.
판례는 아직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신탁재산이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 포함되는지를 놓고 하급심 판단은 갈렸다. 국내 최초로 이 쟁점을 다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17가합408489 판결은, 신탁재산이 위탁자 사망 후에야 비로소 수익자 소유로 귀속된다는 점을 들어 생전증여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포함 여부에 대한 판단 자체를 유보했다. 반면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2020가합100994 판결(2022년 선고)은 신탁재산이 상속재산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특별수익에 해당한다고 보아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 포함시키고 반환을 명했다. 가장 최근인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7. 3. 선고 2021가합547069 판결은 한발 더 나아가, 신탁재산이 적극적 상속재산은 아니지만 사인증여와 유사한 특별수익에 해당해 유류분 기초재산에 포함된다고 보면서도, 신탁을 관리·운용하고 보수를 받는 수탁자(은행)에게는 반환의무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 판결 | 유류분 기초재산 포함 여부 | 핵심 판단 |
|---|---|---|
| 수원지법 성남지원 2017가합408489 | 판단 보류 | 사망 후 비로소 소유권 이전 — 생전증여로 단정 어려움 |
| 창원지법 마산지원 2020가합100994 (2022) | 포함 | 실질적으로 특별수익에 해당 — 반환 명령 |
| 서울중앙지법 2021가합547069 (2024) | 포함 | 사인증여에 준하는 특별수익. 다만 수탁자는 반환의무 없음 |
실제 상담에서 자주 보는 사례가 있다. 아버지가 은행에 부동산과 예금을 맡기며 장남을 사후수익자로 지정한 뒤 사망하자, 다른 자녀가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신탁회사인 은행을 상대로 제기하는 경우다. 이 경우 은행은 단순 관리자일 뿐이라는 이유로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소송 상대를 처음부터 잘못 잡으면 시효만 흘러가고 실제 반환받아야 할 상대에게는 손도 대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반환청구, 상대는 수탁자가 아니라 수익자다
누구를 상대로 청구해야 하는지는 신탁 구조를 뜯어보면 정리된다. 첫째, 은행 등 기관 수탁자는 원칙적으로 반환의무가 없다. 보수를 받고 재산을 관리·운용할 뿐 실질적인 이익 귀속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반환의무는 신탁 이익을 실제로 받은 사후수익자, 즉 대개 특정 상속인에게 있다. 신탁재산이 형식적으로는 신탁계정에 있었더라도, 유류분 계산에서는 그 이익을 넘겨받은 상속인의 특별수익으로 취급된다. 셋째, 귀속권리자가 수탁자 본인으로 지정된 특수한 사례라면 대법원 2022다307294 법리에 따라 그 지정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어, 잔여재산이 누구에게 최종적으로 귀속되는지부터 다시 따져야 한다.
얼마를 반환해야 하나 — 숫자로 계산해보면
상속인이 자녀 세 명(장남·차녀·삼녀)이고, 신탁 외 순상속재산이 10억 원, 아버지가 생전에 장남을 사후수익자로 지정해둔 신탁재산이 20억 원이라고 해보자. 유류분 계산의 출발점은 신탁재산까지 합친 상속재산 총액이다. 총액은 30억 원이 되고, 법정상속분은 각자 3분의 1인 10억 원이다. 직계비속의 유류분 비율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이므로 유류분액은 각 5억 원이다. 장남은 신탁을 통해 이미 20억 원을 특별수익으로 받아 자신의 유류분을 훌쩍 넘겼으므로 반환의무자가 된다. 차녀와 삼녀가 신탁 외 상속재산에서 실제로 받은 몫이 없다고 가정하면, 두 사람은 각각 5억 원씩 총 10억 원을 장남에게 청구할 수 있다.
| 구분 | 금액 |
|---|---|
| 순상속재산(신탁 외) | 10억 원 |
| 신탁재산(장남 지정) | 20억 원 |
| 상속재산 총액 | 30억 원 |
| 법정상속분(자녀 1인, 3분의 1) | 10억 원 |
| 유류분(법정상속분의 2분의 1) | 5억 원 |
| 차녀·삼녀 유류분 부족액(각) | 5억 원 |
판단 기준은 두 가지로 좁혀진다. 신탁설정 시점이 상속개시에 임박할수록, 그리고 특정 상속인 한 명에게 몰아주는 구조일수록 특별수익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신탁 목적이 치매나 질병에 대비한 재산관리처럼 뚜렷하고, 수익 배분이 법정상속분과 비슷하게 설계돼 있다면 다툼의 여지가 줄어든다. 공동상속인에 대한 증여는 시기와 무관하게 유류분 기초재산에 산입된다는 판례 법리도 신탁에 그대로 적용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제3자에 대한 증여는 상속개시 전 1년 이내의 것만 유류분 기초재산에 산입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공동상속인에 대한 증여나 이에 준하는 재산 이전은 시기와 무관하게 산입될 수 있습니다. 신탁을 오래전에 설정했다는 사정만으로 반환청구를 피할 수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2026년 3월 17일 시행된 개정 민법도 변수로 봐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2024년 4월 25일 형제자매의 유류분 규정을 단순위헌으로 무효화하고, 부양의무를 다한 상속인의 기여를 유류분 계산에 반영하지 못하는 점 등을 헌법불합치로 판단한 데 따른 후속 입법이다. 형제자매는 더 이상 유류분권자가 아니고, 오랜 기간 피상속인을 부양하거나 재산 형성에 기여한 상속인은 그 기여 부분을 유류분 계산에서 제외할 수 있는 근거가 새로 생겼다. 신탁의 사후수익자가 실제로 부모를 부양해온 자녀라면, 이 개정 내용이 반환범위를 줄이는 방어 논거로 쓰일 수 있다.
신탁을 설계할 때는 누구에게 얼마를 주느냐만큼, 유류분 산정에서 어떻게 계산될 것인가를 함께 따져야 한다.
유언대용신탁은 상속설계에서 유용한 도구지만, 유류분 계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수단은 아니다. 신탁 계약서를 쓰는 시점부터 반환청구 가능성과 반환의무자를 함께 검토해야 사망 이후의 분쟁을 줄일 수 있다.